불기 2568. 4.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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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와 떠난 오리고기집으로의 나들이(속편)
<밥기행45 - 밥은 기행> - 수안 처사 편3



사람의 평균 수명을 70~80세로 치면, 수안 처사의 낡은 승용차인 벨라(아벨라의 애칭)의 나이는 대략 70대를 훌쩍 넘겼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승용차가 17만에서 20만 킬로를 달리면 폐차 신세가 된다는데 현재 벨라는 16만 킬로를 뛰었으니 말이다. 그 정도 연륜이면 웬만한 산전수전은 겪었을 법도한데.

"물론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죠. 그 중 기억나는 건 차를 빌려간 스님의 부주의로 생긴 일인데, 스님께서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리지 않고 주행하신 거예요.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브레이크가 마모돼 밟히질 않은 거예요. 그래서 휴게실에 들러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고 전화를 하신 적이 있었어요."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스님들이 차를 빌려 타고가다 오르막길에서 정차할 일이 생겼는데, 앞에 주차된 차가 슬금슬금 뒤로 밀려오더니 멀쩡히 서있던 벨라를 쿡 박은 것이다.

"스님들도 놀래고 앞차 보살님도 너무 놀라 내려서 미안하다고 백배사죄를 하더래요. 차의 헤드라이트 위쪽이 쿡 찍혀 들어갔는데, 보통 그런 경우는 몇 십만 원 정도 수리비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차도 낡고 보살님도 너무 미안해하니까 보상해달라고 말하기도 뭐해 그냥 가시라고 했대요."(웃음)

검박하고 순한 스님들과의 인연이 깊다보니, 미숙한 이의 실수로 몸에 상처를 낸들 그저 그러려니 했을 벨라의 삶의 흔적이 유난히도 좋은 것은 아마도 그처럼 살아오지 못한 내 삶의 반증일는지도 모른다. 사실 상처란 남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징표일 뿐임을 익히 알면서도, 수많은 삶의 사건사고에서 남의 탓 없이 덤덤히 넘어가기가 어디 쉬운 일이랴. 유난이나 떨지 않으면 다행인 것을. 여하튼 벨라의 품에서는 그의 낡음만큼이나 농익은 사색과 자각이 절로 일어나 마냥 좋으니, 언젠가는 나도 장롱면허에서 탈출해 꼭 한 번 벨라를 몰아볼 날이 있으리라.

그러한 꿈을 잠시 접어두고, 오늘 벨라와 함께 떠난 곳은 경주 인근에 자리 잡은 오리고기전문점이다. 채식주의자인 수안 처사와 그의 친구들이 오리고기집을 제 발로 찾아갈 리는 없고,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오리고기라고 하면 소문난 곳을 일부러 찾아다닐 만큼 환장하던 때가 있었으니, 벨라에 동승한 사람들 중에서는 혼자서만 유일하게 신이 났다. 잡식에서 팔자에도 없는 채식 체질로 넘어가려는 과도기에 걸쳐진 내 몸의 반응을 살펴도 볼 겸 모처럼 포식도 할 겸 여간 잘된 일이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들 무리 속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표정관리는 물론 말 한마디에도 센스가 필요한 법. "오리고기 집엘 가면 먹을 게 없어서들 어떡해요. 나는 채식을 하고 싶어도 콩을 못 먹으니 어쩔 수가 없다니깐요."라며 약간은 걱정 어린 표정과 언사를 건네 본다.

눈치 빠른 한 동생은 고맙게도 "맞아요, 언니는 콩을 못 먹어 고기를 한 번씩은 먹어줘야 해요."라며 장단을 맞추고, 수안 처사는 "고기 집에서도 찾아보면 다 먹을 게 있답니다."라며 예의어린 걱정에도 착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형님, 저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 있답니다."라는 수안 처사의 불교대학원 후배인 도연 처사의 말에 왠지 얄밉기도 하면서 채식주의의를 지켜가기도 그리 만만한 수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만감이 드는 사이, 벨라는 어느덧 경원(054-774-8775)이라는 오리고기 전문점에 멈춰 섰다. 선발대로 먼저 와있는 사람들 중에는 학교 내에서 이미 한두 번 눈을 맞춘 이도 있고, 친숙한 얼굴도 생판 처음 본 사람도 섞여있다. 오늘의 자리가 마련된 것은 우리 학교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한 교수님과 인사를 나누기 위함이다. 티베트의 불교와 밀교수행을 전공한 교수님인데, 수안 처사와 그의 일당들과 이미 두어 번의 자리를 가진 나는 내 나름대로 그 교수님의 별명을 붙여놓은 것이 있다. (다음 호 부채도사 편으로 이어짐)
글= 함영 |
2009-09-28 오전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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