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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풍경 앞에 섰다. 바라볼 수 있는 건 오래된 석탑 하나와 짙게 물든 은행나무 하나뿐이다. 군데군데 돌무더기가 밑그림만 그린 그림처럼 남아있을 뿐, 그 옛날의 가람은 사라지고 없다. 사라진 풍경 때문일까. 찾는 이가 없다면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을 것만 같다. 저 멀리 당간지주가 목을 길게 빼고 서있다.
절터를 찾은 두 연인이 멈춰선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고, 사라진 풍경은 또 한 번 멀어져 간다. 이제 촛불을 켜던 자리엔 밤마다 달빛이 모여들고, 죽비가 걸렸던 자리엔 산 그림자가 걸린다. 저 빈 절터에 남은 밑그림은 사라진 풍경의 흔적일까. 아직 그리지 못한 그림의 진짜 밑그림일까. 지나간 시간이든 다가올 시간이든 그 시간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