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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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원형 고스란히 남은 '서도소리'는 찬불가
황해도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한명순




팔월과 구월로 건너가는 마지막 날, 서도소리꾼 중요무형문화재 한명순씨를 만났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즉 서도(西道)지역에서 불리던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한다.

한명순씨는 크지 않은 체구에 동안(童顔)을 간직한 분이다. 남도소리와 경기소리는 익숙하지만 서도소리는 조금 낯설다고 했더니, “서도소리 중 ‘수심가’ ‘배뱅이굿’ ‘난봉가’ 등은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것”이라 했다. 서도소리의 특징을 물었더니 생각지도 않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서도소리에는 불교의 원형이 가장 많이 살아있어요. ‘십장엄염불’ ‘산염불’ ‘자진염불’ 등 불교적인 요소가 참으로 많아요. 서도소리 중 ‘배뱅이굿’은 ‘부모은중경’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고려시대에는 평양중심으로 팔관회라든가 연등회가 열렸기 때문에 서도소리에 불교 전통이 가장 많이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서도소리는 불교의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는 신라 진흥왕 때 시작돼 고려시대에 들어서서는 국가적 종교 행사로 발전했다. 팔관회 때는 지방의 장관들이 글을 올려 하례하고, 송나라의 상인이나 여진(女眞)의 사절들이 축하의 선물을 바치는 국제적 불교행사였는데, 서도소리에는 그러한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한명순씨는 6세 때부터 민요를 부르고 다녔을 정도로 소리는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2세이 되던 해, KBS라디오 ‘민요백일장’에 나가 인기상을 받았다. 이때 찬조출연 한 ‘서도소리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김정연 선생이 한명순씨를 눈여겨보았다. 이것이 인연이 돼 1974년 충청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김정연 선생 집에서 기숙하면서 서도소리를 배웠다.

“어떻게 보면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덕분으로 이 길을 걷게 된 것인지도 몰라요. 가장이 없는 집안에 열두 명이나 되는 식구에게는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네 입 하나 덜 수 있다면 스승을 따라 가거라’고 하데요. 그때부터 소리는 저에게 사탕도 됐고, 밥도 됐고, 때로는 눈물도 됐고, 제 인생을 이끌어가는 주인노릇을 하데요.”

김정연 선생은 한씨의 재주를 귀하게 여겨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일 년여의 지도를 받은 후 김정연 선생과 함께 무대에 섰다. 스승은 그녀를 큰 무대 작은 무대 할 것 없이 데리고 다녔다.


1986년에는 스승과 함께 ‘수심가’를 녹음해 세상에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스승이 아끼는 애제자였기에 스승은 자신의 계보(系譜)를 이어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20대의 방종과 방황으로 그 기대를 저버렸다. 한 때는 소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지만, 운명이 놓아주지 않더란다. 또 다시 자신의 운명은 소리로 결정지어졌음을 확인했고, 신명을 다 바쳤다.

스승은 불교 언론지 <불교시보사> 사장으로 활동한 독실한 불자였다. 그 스승 덕분으로 자연스럽게 불자가 됐다. 사찰의 초파일 행사를 비롯해 사찰의 상량식 등 다양한 행사에 스승과 함께 초청받아 공연했다. 그때 ‘십장엄염불’이나 ‘산염불’ ‘자진염불’을 할 때면 자신의 온 몸이 울림통이 돼 소리를 토해냈다. 그야말로 소리삼매가 아니라 염불삼매에 빠져들곤 했단다.

한명순씨는 스승에게 전수 받은 ‘평안도 다리굿’을 새롭게 재조명해 연희극으로 무대화시켰다. 한씨는 2005년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평양다리굿’을 재현했으며, 2006년에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평양 다리놀이 연희극’을 공연해 국악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또 서도소리 축제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연희극이었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평안도다리굿은 평양지방을 중심으로 북한 전 지역에서 행해지던 굿으로 망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주는 위령굿입니다. 평양기생 출신이었던 스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요, 평양시내에 ‘에누다리’가 있다고 합니다. 에누다리를 통과해 상여가 나가는데, 이 다리는 여자들은 건널 수 없었데요. 할 수 없이 에누다리에서 죽은 혼을 천도하고 보내는 자를 위로하기 위해 한바탕 굿을 하던 것이 북한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고 합니다. 굿 형식이었던 것이 일제 때 평안도 지방의 명창들에 의해 놀이 형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저의 스승에 의해 계승됐고, 이젠 제가 스승의 뒤를 이은 것이지요.”

스승은 1972년에 ‘서도소리대전집’을 녹음하면서 ‘평안도다리굿놀이’를 포함시켰을 정도로 애정을 품고 있었단다. 한명순씨는 지금 ‘평안도다리굿놀이 보존회’를 이끌고 있다. 한명순씨 역시 서도소리 중 유독 ‘평안도다리굿놀이’에 애정을 가지는 데는 이유가 있단다.

“형식이 자유롭고 공간을 얼마든지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 시간도 짧게 진행하면 40분정도 걸리고, 길게 하고 싶으면 2시간 30분 정도로 늘일 수 있어요. 공연 중간에 바라춤이나 나비춤 등 볼거리를 다양하게 넣어서 보여줄 수 있어 대형무대에 올려도 손색이없는 연희극입니다. ‘평양도다리굿놀이’는 작은 공연부터 해서 대형무대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놀이입니다.”

‘평양다리굿놀이’에는 ‘십장엄염불(十莊嚴念佛)’ ‘긴염불’ ‘자진염불’ 등 불교의식의 많은 부분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처님오신날이나 산사음악회에서 공연을 해보면 불자들의 호응이 너무나 좋았다고 덧붙였다.

‘십장엄염불(十莊嚴念佛)’은 ‘극락세계 십종장엄(極樂世界 十種莊嚴)’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염불 중 하나로, 극락세계의 10가지 장엄을 염불하는 것이란다. 법장 비구는 아미타 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전 보살 때의 이름이다. 법장 비구는 48대원을 세우고 오랜 세월 수행한 끝에 아미타불이 됐다. ‘무량수불 무량광불’인 아미타 부처님을 찬탄하고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를 찬탄하는 내용의 염불이란다.

‘평양다리굿놀이’에 나오는 ‘긴염불’은 정토종에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대해중보살의 사성(四聖)에게 예배하는 의식이 염불소리로 발전한 것이란다. 또 ‘자진염불’은 ‘십대왕염송(十大王念誦)’이라 하기도 한다. 망자가 지옥에 가게 되면 십대왕(十大王)을 만나 죄에 따라 심판을 받고 모진 고통을 당하게 된다. 망자의 가족들은 십대왕에게 모진 고통을 면하게 해달라고 발원하는데 그것을 염불로 꾸민 것이 서도소리의 ‘십대왕염송’이다.

“‘십대왕염송’을 할 때면 유주무주 고혼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진심으로 발원하게 되요. 2005년 흥사단 초청으로 일제 때 비명횡사한 사람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는데, 그때는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지데요. 마음 다스리는 방편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지극정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명순씨의 바람이라면 점점 사라져가는 서도소리를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릴 것이며, 불교의식과 접목하여 불교의 새로운 연희극을 만드는 것이란다. 또 후진들 양성에 온 힘을 쏟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가서 ‘평안도다리굿놀이’를 멋지게 한 번 공연하고 싶단다. 옛 것을 전승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한명순씨의 다부진 계획을 들으면서 머지않은 시일에 그녀의 공연을 보게 될 것을 기대했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논설위원) |
2009-09-05 오후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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