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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여름의 한가운데 도심 속 산사에서, 바람에 실려온 싱그러운 능소화향을 벗삼아 마음을 적시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 은은한 한잔의 차를 마시며 책 장 넘기는 소리마저 고요한 이곳은 부산의 포교중심 혜원정사의 작은 도서관이다.
부산 연산동 혜원정사(주지 원허)는 지난 1990년 불자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개방했다. 처음에는 5~6평 남짓의 빈방에서 사찰 소유 책에 번호를 붙이고 대출대장을 만들어 아는 신도들만이 알음알이로 이용했다. 점차 도서관을 이용하는 신도들이 많아지고 책이 늘어가면서, 도서관을 확장해 도서관리 봉사자가 근무하는 책상과 컴퓨터를 갖추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하는 등 약 20평 규모의 그럴듯한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지 원허 스님은 “그때만해도 일반인이 불서를 구하기 쉽지 않던 터라 어린이, 청소년불자들에게 꼭 읽히고 싶어, 불교대학 신도들과 스님들이 읽던 책들을 모아 빌려주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국내에서 사찰이 도서관을 20년 이상 유지, 발전한 곳은 열손가락에 꼽힐 만큼 드물다. 도서관 운영은 그다지 새로운 건물이나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진 않지만, 인력수급과 예산부족이라는 큰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소규모의 도서실을 운영하더라도 비치된 도서의 대부분은 한번 기증 받은 도서로 꾸리고 있어, 양질의 도서를 구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혜원정사 도서관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지 원허 스님의 확고한 신념으로 매월 15만원 이상의 예산 배정에서 찾을 수 있다. 절 살림에서 다른 것은 아끼더라도 도서구입비만큼은 한달도 거르지 않고 지급돼, 어린이도서 3~4권, 수필 2권, 소설 2권, 불교서적 3권 등 매월 10권 이상의 신간도서를 구매한다. 특히 새로나온 불교서적과 베스트셀러는 최우선으로 구매해, 이용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원허 스님은 “최근 종교탄압 등 불교가 맞닥뜨린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청소년 포교를 소홀히해 인재를 기르지 못한 탓도 크다”며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늘 돈이 나가지만, 청소년포교는 사람이 남는 것이니 멀리 보고 아낌없이 투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대출 기간이 짧고, 연체시 벌금 및 동기간 대출금지 등 도서 대여에 관한 규칙이 까다로운 일반 도서관과 달리 최소한의 규칙 및 탄력적 운영이 이용자의 증가에 한 몫 했다. 이곳 혜원정사 도서관은 매월 정기법회일인 1, 3, 8, 15, 18, 24일 등 총 6일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한달에 단 18시간 개방한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신도들이 많고, 불교 경전은 한자가 많고 내용 또한 어려워 읽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을 고려해 대출기간은 무제한이다. 더불어 도서관이 문을 닫은 날에는 종무소에 반납할 수도 있어 더욱 편리하다.
매번 도서관 개관시 가장 먼저 들르는 장명순(법명 대지인, 56) 씨는 “늘 책 한권씩 빌리면 그날 집에가는 지하철 안에서 다 읽어버린다”며 “도서관에 와 있으면 보고싶은 도반들도 만나고, 꼭 읽고싶은 신간은 봉사자에게 신청하면 다음달에 어김없이 사다주니깐 더없이 좋다”며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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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리 봉사자 신향옥(법명 보운인, 43) 씨는 “처음 도서관을 찾는 분들은 불교서적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이라 지레 겁을 먹지만, 가벼운 수필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깊이있는 경전해설문집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혜원정사 도서관은 불자 스스로의 수행을 점검하고, 스님과 사찰의 포교에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불자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하고, 책을 통해 올바른 불교교리를 익혀 신행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스님의 법문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책을 통해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또, 사찰의 일정 공간을 대중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해 줌으로써 사찰과 대중의 거리를 좁혀 포교의 장으로 삼았다. 어린이도서를 대폭 확대해 온가족이 함께 사찰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또한 열린 포교의 장이 되었다.
원허 스님은 “불교에 ‘사교입선 捨敎入禪’이란 말을 경전을 보지말고 참선만 하라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데, 가진게 있어야 버릴수 있듯 경전공부를 마친 후 참선하라는 뜻”이라며 “어릴 때부터 만화로 된 부처님 이야기와 같은 재미있는 방식으로 불교를 이해하고, 도서관에서 차담을 나누고 신행상담을 하는 등 도서관을 안락한 신행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불교는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불교인의 지적수준이 포교의 대상이 될 비불자들과 이웃종교인들을 앞서지는 못할망정 뒤쳐져서는 안된다. 책 읽는 불자의 두 어깨에 한국불교 미래의 사활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