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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빈 나뭇가지를 응시하며 나도 모르게 내 머리를 만지고 내 행색을 훑어본다. 수없이 법(法)을 말해 오면서 얼마나 법답게 살아왔는가. 얼마나 추운 사람들의 추위를 헤아려 보았던가.
아픈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했던가. 억울한 이의 울음을 함께 울어 주었던가. 없는 자의 없음을 같이 시려 했던가. 이어지는 물음에 다만 뭇 중생을 향한 참회의 합장을 올린다.”
우리 시대의 비구니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남성 양복을 입고 다녔던 광우 스님.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비구니 강원의 첫 졸업생이었고 조계종 비구니로는 최초로 비구의 ‘대종사’에 해당하는 명사 법계를 품수했다. 광우 스님은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가졌다. 기록으로 남는 최초가 아니라도 광우 스님은 포교 분야서 큰 행보를 보였다.
스님이 1969년에 창간해 1996년까지 27년간 발행 해 온 <신행회보>는 문서포교 역사의 한 축이었다. 포교를 위한 신문이나 잡지 등이 활성화 도지 않은 시기에 ‘신행회’를 조직해 회보를 꾸준히 발간했고 회지 차원을 넘어 전국의 신행단체와 군부대 등에서 각광받았다. 발간 11년 만에<신행불교>로 제호를 바꾸면서 명실상부한 포교잡지로 자리매김을 했다.
1958년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설립한 정각사를 중심으로 펼친 광우 스님의 포교활동 업적을 묵묵히 대변해 주는 <신행불교>가 폐간 14년 만에 새로운 빛을 얻었다. 광우 스님이 매 호마다 썼던 권두언을 정리해 <회향>이란 이름으로 출간했다. 비구니계의거목이 드리우는 서늘한 그늘이다. 27년간 쓴 권두언을 수행과 포교 교리 등 분야별로 정리했다. 좁지 않은 시간의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글들은 오늘날 불자들의 가슴을 콕콕 찌른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추천사를 통해 “법을 보는 자 여래를 본다는 정법의 메시지를 위해 몸소 궁행 하신 스님의 자취가 영원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회향>의 발간을 주도한 호진 스님(前 동국대 교수)은 책머리에서 “<신행불교>가 간행되던 1969년에서 1996년은 국가적으로 뿐만 아니라 불교계 역시 매우 다사다난했던 세월이었다”고 회고 하며 “스님께서는 짧지 않은 이 기간 동안 경전, 교리, 신앙생활, 교단행사, 사회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때로는 지혜를 때로는 격려와 위로를 주셨다. 스님 개인적인 삶의 자취뿐만 아니라 격동기의 한국 불교계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실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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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 스님을 모시고 오랫동안 <신행불교>의 편집 일을 했던 수필가 맹난자 선생은 발문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펼치던 생의 여름은 비껴가고 가을 기운이 완연한 스님의 존안을 뵈면서 자연의 순리를 목도하게 된다”며 애잔한 회고를 보였다. 올해로 출가 71년을 맞은 광우 스님은 이제 담담히 정각사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한 치도 흩트리지 않으며 불교의 현대화와 한국비구니계의 위상을 정립한 광우 스님이 헤쳐 온 시간들은 이제 한 권의 책 <회향>으로 법계에 회향되고 있다. 조계종출판사 펴냄|1만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