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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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서 100년 前 태극기 나와
‘독립신문’ 등 독립운동 사료 6종 17점 발견
1919년 12월, 독립운동 활동을 하던 백초월 스님(1878~1944)을 검거하기 위해 일본 순사가 서울 진관사로 들이닥쳤다. 스님은 순사에게 잡혀가기 전 진관사 칠성각 불단 뒤에 한지로 싼 보따리 하나를 급히 숨겼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09년 5월 26일, 진관사 칠성각(서울시 문화재 제33호) 해체복원 불사 현장을 지휘하던 진관사 총무 법해 스님은 불단과 기둥사이 벽면에서 흰 한지 뭉치를 발견했다.

범상치 않은 발견에 스님은 주지스님에게 사실을 알렸다. 물건을 대중방으로 옮긴 후 조심스레 펼쳐 본 주지스님과 대중스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지 속에는 곱게 접힌 태극기와 <독립신문> <신대한신문> 등 인쇄물 이 다수 있었던 것.

백초월 스님이 숨겨둔 뭉치였다.

서울 진관사(주지 계호)는 8월 1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칠성각 해체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태극기 및 독립운동 사료 6좀 17점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독립운동 사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 단체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1점을 비롯해 <신대한> 3점, <독립신문> 2종 4점, <조선독립신문> 5점, <자유신종보> 3점, 경고문 1점이다.

태극기는 세로무늬의 태극과 4괘 덧붙임식 태극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덧붙임식 태극 은 1900년대를 전후해 태극기 제작 양식이 규정되기 이전에 사용된 방식이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연구소 김용달 연구위원은 “제작 방식으로 볼 때,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크기로 볼 때 3ㆍ1운동 등 시위보다는 단체용으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극기와 보관됐던 사료 가운데에는 단재 신채호가 중국 상해에서 창간한 <신대한> 신문과 독립운동세력이 발간해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한 <자유신종보> 등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자료가 많다.

독립운동연구소 김주용 박사는 “창간호와 제17, 18호만 중국에 있고 국내에는 필사본으로 보관된 <신대한> 신문의 제1ㆍ2ㆍ3호가 함께 발견된 것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큰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발견된 독립운동 사료를 조사한 동국대 문명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불교계와 진관사, 독립운동을 전개한 스님들이 3ㆍ1운동 당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추정케 한다”고 설명했다.

계호 스님은 “고려 현종때 창건된 진관사는 2010년 창건 1000년을 맞는다. 창건 당시부터 진관사는 진관대사가 국사로 책봉된 것을 비롯해 조선시대에는 수륙사, 독서당 등으로 나라와 연관 깊은 사찰”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독립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등의 발견으로 진관사가 근현대 격변기에도 중요위치를 차지했던 사실이 드러났다”며 “발견된 유물 보존과 복원을 비롯해 학술세미나 개최를 통한 학술적 재조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조동섭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8-11 오후 5:55:00
 
한마디
미투리 조선시대 승병이 많이 나왔듯이, 일제 강점기에도 꺼져가는 나라를 살리려고 스님들이 많이 활동하셨군.
(2009-08-17 오후 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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