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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葬墓) 문화도 변화를 거듭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장문화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을 거쳐 납골(納骨)과 산골(散骨), 매골(埋骨)의 형태로 다양화 되고 있다. 얼마 전 서거 한 노무현 前 대통령의 경우 화장한 후 유골을 수습하여 사찰에 모신 채 49재를 지내고 집근처에 매골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옆에 ‘아주 작은 비석’을 세울 계획이다. 박정희 前 대통령의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고 최규하 前 대통령의 묘소는 대전 국립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있다. 윤보선 前 대통령의 경우 충남 아산 음봉면 선영에 묘소가 있다. 이들 3명의 전직 대통령은 매장의 풍습을 따랐다.
조선시대 왕들은 어땠을까? 두말할 것 없이 매장의 풍습을 국법으로 지켰고 능의 규모도 엄청났다. 국상이 나면 신하들은 상례와 능역공사를 위해 국정을 중단했다. 조선 개국조 태조대왕부터 마지막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대를 이은 제왕들의 능역은 지금도 서울과 경기 지역에 흩어져 있다. 조선왕조 500년을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조선왕들의 능이다. 조선 왕능은 조선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조선왕의 능은 그 왕의 재임을 그대로 닮아 있기도 하다. 왕의 업적과 권위, 세자를 얼마나 효순한 인물로 두었느냐, 후임 왕의 정치가 얼마나 평탄했느냐 등에 따라 능의 모양과 권위도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왕의 능만이 아니다. 왕 곁에 묻히지 못한 비와 계비 혹은 후궁들의 능역도 고단한 생애를 묻은 채 역사의 언저리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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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우상씨와 사진작가 최진연씨는 조선왕릉 순례를 통해 조선과 오늘을 동시에 읽고 있다. 왕릉에서 500년의 간극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의미한 설정이다.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1권과 2권은 잠든 자와 잠들지 못한 자의 차이를 떠나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두 사람은 ‘역사’로 전하는 것 이외의 것을 보기위해 더 크게 눈 뜨고 다녔다. 소설가는 과거 왕의 숨결을 들으며 오늘날 백성들의 삶을 읽었고 사진작가는 입을 굳게 다문 석상들로부터 ‘부귀도 영화도 한조각 구름’이라는 초탈의 메시지를 들었다.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에는 왕릉의 기본 구조와 각 석물들의 의미, 능 조성을 둘러싼 일화와 능의 주인(왕)이 생시에 남긴 업적과 왕가의 비밀스런 이야기들까지 망라됐다. 그래서 이 책은 왕릉 순례에 유용한 교과서로 손색없다. 각 왕들의 가계도와 능의 구조도(능상설도) 조선왕의 역대계보 등 참고자료도 풍부하게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이 두 작가의 왕릉 순례는 ‘숭유억불’을 주창했던 왕조의 왕들로부터 불교를 읽었다는 ‘특화된 매력’을 갖는다. 조선의 왕들이 ‘숭유’라는 국시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억불’의 방침에 따라 불교를 철폐하지도 못했다. 불교는 그 자체로 인간의 삶에 녹아 있는 종교이지 시대를 다스리는 이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종교와 이념의 현실적 차이를 인정했던 왕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조선의 왕릉에서 불교를 읽는 일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왕릉순례는 권력과 권위, 부귀영화와 진정한 행복 등을 포함해 삶과 죽음에 대한 비감한 사색과 함께 역사를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갖는다. 능역이 좁지 않고 숲길이 울창해 건강을 다지는 효과까지 안겨준다. 책의 내용은 <현대불교>에 2007년부터 2년간 연재됐던 것을 보완한 것이다.
다할미디어 펴냄|각권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