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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나니 하늘과 세상이 말끔해진 느낌이다. 하늘은 아직도 미진한 듯 먼 북소리와도 같은 천둥소리를 낸다. 강현 중학교는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으며 수목이 많아 싱그러웠다.
해마다 12만 명의 아이들이 가출을 하고 6~7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공교육이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라고 하지만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참교육에 열정을 바치는 이가 있다고 해서, 또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한마디를 꼭 일러준다는 선생님이 있다기에 강현 중학교를 찾았다.
생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김남선 선생님은 한 해가 모자라는 육십이라는데 얼굴이 소녀처럼 맑다. 학교 수업만으로도 벅찰 턴데, 그동안 펴낸 책이 15권이나 된다. <등불의 역사> <배우며 가르치며> <인도에서 온 편지> <5박6일 명상체험기> <엄마, 여자와 남자는 어떻게 달라요> <행복을 가꾸는 교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즐거운 국사 32강> 등등 목록을 열거하기도 힘들다. 김남선씨는 학교 수업 외에도 또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도맡아 하고 있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십여 년의 세월동안 참교육상담소 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2000년부터 ‘교육전략21’프로그램연구위원으로 일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교사들의 마음공부를 위한 ‘마음자람 메카’ 인터넷 카페지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교사들이 모여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아담한 공간 ‘마음자람원’을 개원했다.
“저는 교사들의 정신이 건강하고 행복감으로 충만해져 있어야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그 정신과 에너지가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사들의 마음 다스리기와 깨침을 위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요.”
일급정교사 자격증연수가 매년 서울대에서 열리는데 그때 천여 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마음공부를 강의해 온지도 십년의 세월이 지났다. 김남선씨는 선생님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교육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학생들에게 지식 말고도 ‘참인간’이 되는 길을 안내해주고 싶었고 전인적인 교육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한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는 불교사상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교연구반’을 만들었다. 김남선씨는 “부처님의 사성제와 팔정도는 완벽한 진리이기에 이것만 완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처음엔 불교를 교리적으로 접근했지만, 공부를 하면할수록 수행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천안의 호두마을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했고, 방학 때는 집중수행에 들어갔어요. 수행을 하면서 만난 분들 중에 용타 스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느 수련회에서 용타 스님께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을 삼십 분 정도 파고 들어가는데 나중에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나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너’는 또 다른 ‘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김남선씨는 수업시작 전에 3분 명상을 하는데, 일 년이 지나고 보면 아이들이 참으로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단다. ‘지금도 벗님이라 부르며 장난을 걸어오는 아이들을 만나면 온 몸이 기쁨으로 차오른다’는 김남선씨는 새벽 5시면 일어나 1시간동안 오체투지를 하고 30분 정도 명상을 하고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걷기 수행인 경행(經行)을 하다보면 1시간도 금방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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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선씨는 “역사(歷史)의 사(史)자는 사람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면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실상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전달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과거를 참되게 부활시킬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미래를 탄생시키는 시금석이 되어야 한단다.
“저는 가능하면 모든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의 현실로 가지고 와서 자신을 살피는 공부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자기 삶의 창조자요 또한 역사 발전의 주체자로 안내하고 싶어 수업시간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며, 이 우주의 주인공 또한 ‘나’임을 깨닫게 되지요.”
김남선씨는 신라 화랑도의 ‘세속오계(世俗五戒)’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지켜야 할 오계’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오계’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오계’ 등을 스스로 작성해보라고 한다. 역사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 또한 역사의 한 단면임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경계하고 조율해나가는 것까지도 배우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 온 것은 다른 큰 뜻이 있어 온 것인데, 가장 창의력이 왕성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십대 때 암기식 교육으로 멍드는 것이 참으로 가슴 아파요. 암기식 교육은 아이들에게서 창의력과 자유의지를 빼앗아 버립니다.”
암기식 교육에 길들여진 어른들이 만든 제도로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단다. 김남선씨가 학생들에게 또 강조하는 것이 인사예절이란다. 수업시작 전에 ‘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는데 여기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단다.
“인사(人事)는 ‘사람의 일’이라는 뜻인데, 사람이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사람다움을 잘 나타내주는 일이 인사입니다. 그리고 차렷은 ‘정신 차려라’는 의미인데,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대할 때 깨어서 집중하라는 것이지요. 경례(敬禮)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 일가친척, 친구 등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때 기쁨이 피어나고 행복감이 증폭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김남선씨는 불교입문을 ‘부처님 일생 배우기’부터 시작했기에, 이런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대상 ‘부처님의 일대기를 통한 심성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을 처음 활용한 곳이 2005년 괴산 다보사 청소년 명상캠프다.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고자 한국불교연구원에서 선사상을 공부하기도 했다. 청소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늘 생각하는 김남선씨 눈에는 나쁜 어른은 있어도 나쁜 아이는 없단다. “나쁜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이혼한 부모를 비롯한 문제의 부모들이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도 힘든데 부모의 욕심과 희망사항을 짐 지워서는 안 돼요.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대로 또 자신이 믿는 대로 삶이 펼쳐지는 것이니 자신에 대한 긍정의 강한 믿음이 성공의 열쇠”임을 강조한단다. 이것 또한 지족(知足)의 대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알게 되면서 배운 것이란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마음자람원’을 좀 더 활성화해 많은 교사들과 영성교육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화두만 해결되면 자신의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김남선씨의 한 마디를 가슴에 담고 교정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