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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儀式)이 없는 종교가 가능할까? 불교는 형상과 형식에 대한 집착을 거부하는 종교라지만 알고 보면 의식이 다양하고 복잡한 종교다.
현대 한국불교에서도 의식은 절대적이다. 의식을 통해 가르침과 신행이 전승되어 왔으므로 교리가 피라면 의식은 뼈라고 말할 만하다. 조석예불에서 각종 재일불공은 물론 관혼상제와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불교의식은 다양하고 동작하나에서 염불 한 구절까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보기엔 일상적인 것 같지만, 목탁치고 염불하는데도 ‘도(道)’가 있는 것이다. 의식은 종교적 상징의 총체다.
그러나 불교 의식의 원형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기도 어렵지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하기도하고 첨삭되기도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의식이 전승되는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길은 직접적인 전수 곧 도제식 교육에 의한 세습이다. 스승 앞에서 구음을 배우고 목탁이나 종 혹은 징을 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과거 불교의식은 도제식 교육에 의한 전승이 대부분이었다.
193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안진호 스님의 <석문의범>이 출현했다. 의식 집전이 절마다 사람마다 다르고 경문의 내용에 있어서도 각기 차이가 많아 의식을 통일하고자 하는 발원에서 나온 것이 <석문의범>이다. 이 책은 그동안 불교의식의 가장 튼튼한 텍스트로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러나 내용상의 허점도 적지 않고, 책만으로 의식을 배우고 의미를 익히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게 반세기가 넘도록 받아 온 지적이었다.
그로부터 78년이 지나 <승가의범>이 나왔다. <석문의범>의 허점들을 최대한 보완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 온 대목들을 총괄적으로 정리한 새로운 의식의 텍스트가 출현한 것이다. 조계종의 초대 어산장인 동주 스님(사진)이 17년간의 공력을 들여 완성한 의미 있는 불사다.
<승가의범>은 동주 스님 혼자의 의견으로 묶여진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관계자들이 수년 간 토론을 거듭하며 완성했다. 송암 벽응 스님 등 어산의 권위자들과 월운 우룡 고산 종진 도원 스님 등 대강백들이 부문별로 감수를 했다. 운문사 상주 영덕 스님은 7년 동안 교정쇄를 붙들고 ‘정진’했다.
“글자 하나의 의미를 새기고 또 새기면서 원고를 만들고 토론하고 다시 교정을 하느라 17년의 세월이 하루같이 흘러가 버렸다”는 동주 스님은 “여러 권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최대한 공통분모를 가려내고 다시 의견을 참고해 최종적으로 원고를 확정하는 동안 우리 불교의 의식이 이토록 체계 없이 전해져 왔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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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의식을 총망라한 <승가의범>은 의식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각주를 달았다. 여러 가지로 의견이 다른 경우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무엇보다 초파일 봉축 법요식에서 행하는 ‘관불의식’과 불상을 소제하기에 앞서 행하는 ‘불상소제의식’은 각종 의식을 참고하여 동주 스님이 창안한 것이다.
의식의 도제식 교육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승가의범>은 흐트러진 의식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석문의범>과 그 이전의 <작법귀감> <일용작법>등 다양한 저본들을 우리시대에 맞추어 편찬 한 예는 없기 때문이다. 한문의식에서 한글의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승가의범>이 출현한 것은, 한문 원본을 바르게 밝혀야 한글화 작업도 제대로 된다는 면에서 주목되는 것이다.
“의식도 지극한 수행”이라는 동주 스님은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청정한 계행 △경문을 외면서 그 뜻을 관하는 정진(誦文觀義) △사성(四聲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을 제대로 익힌 송주 △수행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원사 펴냄|6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