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문화 > 문화
시인 김어수 법사의 쓸쓸한 탄생 100주년
[죽비와 목탁] 취재부 김성우 부장


김성우 취재부장.
“자기 수양을 위해 입산(入山)이 필요한 것처럼,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하산(下山)도 필요하다.”

현대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이자 조계종 첫 중앙상임포교사였던 영담(影潭) 김어수(金魚水, 1909~1985) 법사. 우리 시대의 보살 석주 스님과 범어사에서 함께 공부한 비구승이었다가 출가 25년만에 환속하면서 밝힌 하산의 변이다. 이후 국어교사와 교장,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후 입적 직전까지 포교사로 법을 전하면서, 날마다 한 줄씩 시를 써 부처님께 공양했다는 그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 불교계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오히려 그의 고향인 영월군에서 시비(詩碑)를 건립하는 등 선양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불교계와 문단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사이 중동면 직동리 주민들의 뜻과 군의 예산지원으로 설립된 시비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단풍산 계곡축제에서 제막식을 가진 김어수 시조시인의 시비가 잘못 제작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 법사의 제자인 상욱 스님(불암사)과 김어수선양사업회(회장 신대식)에 따르면, 당시 시비는 군비 2000만원으로 직동리 주민들이 제작했으며 상욱 스님과 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장 한분순) 등이 “시조의 형식(율격)을 살리지 못한 채 내용이 새겨져 선생의 작품과 시정신이 왜곡됐다”며 재제작과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선양사업회는 올해 가을 쯤 추진하는 ‘김어수 100주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를 지낸 김어수 시인의 시비.
년 기념사업’에 문학공원비를 세우면서 기존의 시비를 치우고 시비를 다시 건립할 계획이다. 주민들도 불교계나 선양사업회 등에서 시비를 다시 제작할 경우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예산 확보 문제로 기념사업이 제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김 법사의 사진과 시집, 자필원고 등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상욱 스님은 “김어수 선생의 작품과 삶이 문학사적으로 재조명 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고향사람들의 무지와 소홀한 행정으로 선생의 참뜻이 왜곡되고 있다”며 “늦었지만 선생의 사상과 문학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불교계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과 함께 대불청의 기초를 다지고 1세대 포교사로서 전법의 큰 공을 세운 김어수 법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공덕을 기억하는 조계종 포교원과 대불청, 중앙신도회 관계자를 중심으로 시급히 김 법사 선양사업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불교계에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지 못한다면, 영월군에서 추진하는 선양사업을 자문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김성우 기자 | buddhapia5@buddhapia.com
2009-07-06 오후 3:03: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