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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조계종 개혁 이후 첫 선출직 포교원장을 역임했던 정락 스님(만의사 회주)의 ‘법문’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웅변적이기 보다는 자상하고 쉬운 비유로 법문의 ‘참맛’을 보여주는 정락 스님은 수첩이 법문 일정으로 빼곡하다. 안양 한마음선원에서는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 법문을 하는데, 28년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또 서울대 병원에서도 25년째 매주 금요일 법문을 하고 사법연수원이나 기업체 공무원교육 등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맛있게 요리해 전해준다.
“무진장 스님의 법문과 암도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두 분의 법문 스타일 중간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정락 스님의 법문은 다양한 비유와 정곡을 찌르는 생활이야기 그리고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명품’이다. 법회 현장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대중의 많고 적음을 묻지 않는 정락 스님의 법문 이력 30년 만에 첫 법문집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라는 책의 제목이 좀 모호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이렇게’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책을 잃지 않고는 알 길이 없다. 우선 책 속의 이야기 두 토막을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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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신도님이 장갑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겨우내 따뜻하게 잘 썼는데 어느 날 장갑이 한 짝 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짝을 다 잃었으면 주운 사람이 잘 쓸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일어나야 하는데, 한 짝을 찾을 생각부터 하였지요. 이렇듯 생각을 선택하는 것에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인생관을 가졌다면 그런 판단이 앞설 수 있습니다. 사실 누가 물어보면 그런 선택을 하리라고 대답할 수도 있지만,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아까워서 찾으려는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판단은 머리로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돼야 합니다.
#며느리가 설거지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아들을 부릅니다.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며느리 잘 못 얻었다’고 생각 하며 딸네 집에 갔습니다. 딸이 설거지를 하다가 사위에게 같이 하자고 하니까 사위는 ‘남자가 왜 부엌에 들어가느냐’며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할머니는 ‘사위를 잘 못 얻었다’며 속상해 합니다. 그런데 아들에 집에서는 ‘부부가 서로 네 일 내 일 없이 사이좋게 같이 하니 참 좋다’고 생각하고, 딸네 집에서는 ‘사위가 사나이 대장부답다’고 생각하면 속상할 일이 아닙니다. 이치로는 잘 아는 일이지만 자기 입장만 생각하니까 여유도 없고 배려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간결하게 정리된 법문을 통해 정락 스님이 한결같이 당부하는 가르침의 핵심은 ‘업력(業力)으로 살지 말고 원력(願力)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행에 해당하는 원력의 삶을 추구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어느새 중생심에 이끌려 업력의 행동을 하는 게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장갑을 잃어버리고 처음 하는 생각이 업력과 원력의 차이다. 또 며느리와 사위를 보는 할머니의 마음자리가 업력에 치우친 대표적인 사례다.
“나는 업력보다는 원력으로 살고 싶었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수행자로서의 원력 보다는 중생의 업력에 이끌리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늘 나는 원력으로 살고 싶어요.”
정락 스님은 “진정한 수행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루려는 마음마저 놓아 버리는 것”이라며 불자들이 업력보다는 원력에 의해 살아가는 길을 다양하게 제시해 준다. 염라대왕 앞의 업경대는 원력보다는 업력에 의한 행위를 더 잘 녹화하므로 원력의 삶에 중독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게 스님의 당부다. 불광출판사 펴냄|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