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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 대사와 혜가 스님의 문답이다. “마음을 편안하게[安心] 해주십시오”라는 혜가 스님의 질문에, 달마 대사는 “불안한 네 마음을 가져와라”라고 답했다. “마음을 가져오면 대신 안심시켜 주겠다”는 달마 대사의 말에 혜가 스님은 말문이 막혔다. “마음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대사는 “만약 찾았다 한들 그것이 네 마음이겠는가? 나는 이미 너를 안심시켰다”라고 말했다.
달마 대사의 이 말 끝에 혜가 스님은 깨달음을 얻었다. 안심법문(安心法問)의 일화다.
혜가 스님이 마음을 찾던 끝에 얻은 해답은 일체 사물이나 현상이 본래 공적하다는 것이었다. 또 깨달음이 본래 마음에 있어 멀리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불교는 ‘마음공부’라 불린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됨은 물론, 다른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말처럼 일체의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마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움직일까?
밝은사람들(소장 박찬욱)이 6월 1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주제로 제5회 학술연찬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초기불교와 상좌부불교(미산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유식불교(한자경 이화여대 교수) △선불교(윤원철 서울대 교수) △서양철학(최화 경희대 교수) △정신의학(김종주 라깡정신분석연구소장) △인지과학(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등 각 분야별로 ‘마음’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초기ㆍ상좌부불교- 곧은 마음이 행복 가져와
미산 스님은 주제발표 ‘변화무쌍한 마음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에서 찰나심식설을 중심으로 마음을 설명했다.
스님은 “중생의 마음은 하루 동안 5만여 가지를 생각할 만큼 산란하게 변화ㆍ요동치고 있다”며 “마음은 연기적 작용을 통해 생성과 지속과 소멸을 찰나찰나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좌부에서는 물질현상이 생성ㆍ지속ㆍ소멸될 때 마음현상은 17찰나(0.2초) 생성ㆍ지속ㆍ소멸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미산 스님은 “찰나설과 결합된 인식설이 상좌부의 마음수행론에 철저히 적용됐다”며 “바르지 못한 과살이 과녁을 정확히 맞추기 어렵듯 곧은 마음만이 내면의 고요와 평온, 기쁨과 행복, 지혜와 자비를 가져다준다”라고 주장했다.
◇유식불교- 나와 남의 한마음 찾아야
한자경 교수는 ‘마음 활동의 두 층위’를 통해 마음을 표층의 마음(妄心, 私心)과 심층의 마음(本心, 公心)으로 분류했다.
한 교수는 “자신과 세계를 공의 마음으로 자각하고 나면, 자신이 바라보는 일체 현상세계가 모두 자기 마음 안에 그려지는 마음의 변현이라는 것[一切唯心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무분별한 전체에 대한 각성을 ‘본각(本覺)’이라 했다. 누구나 갖춘 진여 또는 일심의 자기자각성을 원효는 성자신해(性自神解)라 했고 지눌은 ‘공적영지(空寂靈知)’라 표현했다.
한자경 교수는 “사람들은 하나의 마음(一心)을 나와 남의 마음으로 실감하고 있지 못하다”며 “망심(사심)을 넘어선 본심(공심)이 우리의 진정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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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마음은 만법의 근원
윤원철 교수는 주제발표 ‘마음을 가져와라’를 통해 선불교적 시각으로 마음에 접근했다.
마음은 선종의 일대사(一大事)다. 윤 교수는 “선에서 주제로 삼는 마음이란 늘 그러한[如如] 마음, 즉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마조어록>에는 “일체법은 모두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모두가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은 모두가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원”이라 했다.
윤원철 교수는 “<나옹화상어록>의 ‘개가 뜨거운 기름 솥을 보고 핥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것처럼’이라는 말과 같이 팽팽한 실존적, 인식론적 긴장을 그대로 (수행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선불교에서 전개되는 마음의 요점”이라고 주장했다.
◇서양철학-영혼 탐구가 마음에의 접근
최화 교수는 ‘생명의 능동적 운동’에서 베르크손의 이론으로 마음을 설명했다.
베르크손(Henri Bergson, 1859∼1941)은 “과학적 지성을 통해서는 인간이 궁극적 실재를 꿰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한 서양철학자다.
최 교수는 “인간은 기억 속에서 물질세계와 만나며 그 속에서 산다. 그때그때 필요한 기억이 기억의 내부와 외부를 오가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정신과 물질은 인간의 몸과 그것이 행하는 지각과 행동에서 만난다“고 말했다.
이어 최화 교수는 “영혼 역시 근본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운동이다. 본래 물질을 향한 인간의 영혼은 지성으로 특징되며, 공동의 작업이 이어지면 인간은 물질과 생명 모두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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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식은 마음의 일부분일 뿐
김종주 소장은 주제발표 ‘무의식을 통한 마음의 흐름’을 통해 프로이드와 라깡의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마음을 해석했다.
정신분석에서 의식은 마음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다. 철학 등이 마음을 의식이라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김 소장은 “인간 의식의 대부분은 무의식으로 구성됐다”며 “마음에 대한 이해는 무의식의 흐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프로이드는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눴고, 라깡은 상상계와 상징계와 실재계라는 주체성의 삼각구조로 분류했다.
김종주 소장은 “라깡의 무의식은 상징계의 기능으로 일종의 기억이다”라며 “과거의 누적된 업의 역사를 종자의 형태로 기억해 저장하는 근본식인 유식불교의 아뢰야식과 유사하다”라고 강조했다.
◇인지과학-공간적 외연 갖춘 마음으로의 확장
이정모 교수는 ‘뇌-몸-환경의 상호작용으로서 마음’에서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마음을 조명했다.
이 교수는 “데카르트는 몸은 공간적 외연(확장)을 지닌 실체며, 마음은 외연이 없는 생각하는 실체라 개념화했다”라며 “현재 마음에 대한 개념은 공간적 외연(확장)이 없는 것이 마음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공간적 외연이 있는 마음으로 진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지과학에서 마음은 한 사람의 뇌 속에만 갇힌 그 무엇이 아닌 환경과 통합돼 여러 사람을 비롯한 환경과 상호작용해 특징지어진다.
이정모 교수는 “마음을 바라보는 동ㆍ서양 관점의 접점을 찾는 것과 같은 연결고리가 인지과학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음은 불교적 관점에서는 일체의 근본이지만, 서양에서는 방법론적 접근과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서의 접근이 지배적이었다.
좌장을 맡았던 김종욱 동국대 교수는 “현대 학문에서 마음은 뇌와 몸과 환경이 연결된 총체적인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라며 “이 움직임의 원리는 상호의존성이며,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라고 회통시켰다.
한편, 이날 행사는 자료집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운주사 刊)의 사전출간을 비롯해 철저하고 짜임새 있는 준비와 진행으로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행사는 불교TV(www.btn.co.kr)에서 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