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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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교인연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불교 생사관 보여줘



생전에 해인사를 자주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노무현 前 대통령 유서 전문-


5월 23일 탈(脫) 권위주의와 지역 균등 발전 등의 가치를 고집스럽게 추구하며 국민의 편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공인으로서 스스로를 ‘무종교인’이라 밝혔지만 노 전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불교와 깊은 인연 맺으며 살아왔다.

특히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그의 유언은 불교 존재론의 핵심인 생사일여(生死一如)사상이 담겨있다.

노 전 대통령의 일생은 생을 마치는 순간 보여준 그의 생사관이 암시하듯, 불교와 뗄 수 없는 인연의 수레바퀴를 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집에다 부처님을 모셔놓고 아침마다 종을 흔들면서 독송을 하셨는데,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곤 했다. 어렸을 때 뒷산 암자인 화일사(현 정토원)에서 놀았다”며 “불교에 대해 아주 친숙하다”고 했다.
고향 형님인 봉화 정토원 선진규 원장(前 전국신도회장)과 스님이 된 고향 친구, 평생 도반 권양숙 여사 등 그는 항상 불자들 속에서 살아왔다.

가난한 농가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명석한 두뇌로 범상치 않았지만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장학생으로 부산상고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김해 장유암에 머문 그에게 불교는 더 이상 낯선 존재일 수 없었다.

스무살 때 〈반야심경 해의(解義)〉를 읽는 등 젊은 시절에는 불교 서적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학적 관심이 남달라 〈불교학개론〉〈세계의 종교〉등 개론서들을 독파했다. 집에는〈유마경〉〈법화경〉〈화엄경의 세계〉등의 경전을 소장할 정도로 불교에 대한 관심은 깊었다.

불교의 ‘관용과 자비’의 정신이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나가는 정신적 기반이 될 것이라 믿었던 그는 1999년 새천년민주당 불자의원 모임인 ‘연등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불자’란 사실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2001년 대선 기간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당시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을 비롯해 각 교구본사 사찰을 방문하며 원로ㆍ대덕 스님들과 인연을 맺었다.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역대 후보 중 처음으로 북한산-천성산-금정산 관통 백지화 등의 ‘불교계 10대 공약’을 제시하며 불교계의 민심을 파고들었다. 또 불심 깊은 권양숙 여사가 불교행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2002년 12월 19일, 그는 1201만4277표(48.9%)라는 역대 대선 사상 최다 득표로 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대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대통령 당선 후에는 공약으로 내세웠던 ‘북한산관통도 백지화’를 철회해 불교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003년 12월 22일 해인사를 찾아 법전 스님을 예방하며 참회와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해인사에 우리나라 최고(最古) 목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비로전을 건립하는데 특별교부금 30억 원을 지원했다. 퇴임 전인 2007년 11월 24일 열린 낙성법회 때에는 부인 권 여사와 함께 직접 해인사를 찾기도 했다.

또 양양 낙산사가 화마로 손실됐던 2005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에 참석해 “천년고찰 낙산사가 산불로 훼손됐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착잡했다”며 “국가발전의 밑거름은 화합과 상생의 불교정신이다. 불교가 더욱 융성해서 국민들 가슴속에 더 많이 퍼지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옆에는 언제나 권양숙 여사가 있었다. 법전 스님으로부터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을 받은 권 여사는 파란만장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을 지혜와 자비를 닦는 불자의 원력으로 내조했다.

권양숙 여사는 2008년 2월 22일 서울 봉은사(주지 명진)를 방문해 새벽예불에 참석하고 108배를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권 여사는 “청와대 내에 모셔져 있는 불상의 불전함을 5년 만에 개봉했다”며 280여만 원의 시주금을 명진 스님에게 전달했다. 권 여사는 대웅전에 모인 신도들에게 “지난 1989년부터 봉은사를 조용히 찾았었다”며 “노무현 대통령 퇴임 전에 봉은사를 와 보고 싶었다”고 방문 이유를 밝히고 건호 씨와 정연 씨 등 두 자녀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인등기도비 5년치를 납부해 봉은사는 사실상 노 전 대통령 가족의 원찰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그는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지난 4월 5일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등 총무원 관계자 20여 명이 인근 봉화산 정토원 5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봉하 마을을 찾자 노 전 대통령은 “큰 스님들께서 이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며 크게 반겼다. 또 스님들과 종교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박연차 게이트’ 압박 수사로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기도 했다.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유해는 생의 마지막 발길을 옮겼던 봉화산 정토원에 부모님의 위패와 함께 안치됐다. 고통 받는 중생의 아픔을 대변해 온 ‘서민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마치고 부처님 도량에서 마침내 참된 안식을 얻은 것이다.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09-05-29 오전 8:51:00
 
한마디
한라산 국민장 영결식 불교의식 초라. 국민들이 지켜보는 식. 홍법 포교의 장이다. 허나 불교는 준비가 안됐다. 반야심경 독경때 입다문 스님. 유족들도 함께 독송하는데. 도대체 장엄하지 않았다. 스님은 왜 10분인가. 불교는 매사에 철저해야 한다. 고민할 때는 고민하고 보다 나은 법을 찿아야 한 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정신이 올곧게 드러나야 한다.
(2009-05-29 오후 1: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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