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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스님(1899~1988)은 조계종 3ㆍ4대와 6대 종정을 역임했던 선지식이다.
고암 스님이 금강산에서 만공 스님을 모시고 수행하던 때다. 어느 사찰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암 스님은 공양주 소임을 자청했고, 물을 따뜻하게 데워 대중스님들에게 올렸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만공 스님이 하루는 고암 스님을 불렀다. “자네는 어쩌자고 대중들 세숫물까지 덥혀서 떠다 바치시는가. 수년전 정혜사에 있을 때도 그러더니 여기 금강산에 와서도 그리하여 내 보기가 민망하이.”
고암 스님이 답했다. “절밥 먹은 지 몇 해가 됐다고 해서 마음속에 아만심이 돋아나고 그 아만심으로 해서 교만해진다면 이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도리가 아닌 줄로 압니다.”
아만심을 경계하고 스스로 하심하기 위해서 일부러 궂은 일을 자청했던 고암 스님은 자비보살이었다.
3차에 걸쳐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는 등 1960~70년대 불교계를 비롯한 사회를 이끈 선지식이었으나, 남다른 하심행으로 자비보살로만 알려졌던 고암 스님에 대해 학술적 조명이 시도돼 눈길을 끈다.
진월 스님(동국대)은 5월 23일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고암 대종사 생애와 사상의 특징 일고’를 발표했다.
스님은 “고암 대종사는 교학과 계율에도 밝고 세계적인 포교와 불사 및 보살행을 아울러 실천한 당대의 선지식이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모범적으로 살았던 자비보살”이라고 말했다.
고암 스님은 법문에서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국토 즉 세상도 맑고 깨끗해진다’는 심정국토정(心淨國土淨)을 강조했다.
진월 스님은 “고암 스님은 참선을 중시했으나 계ㆍ정ㆍ혜 삼학을 원만하게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며 “참선법의 안목으로 염불 등 수행분야를 불이(不二)로 회통한 것은 근래에 드문 지도자적 특징일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율사였던 고암 스님은 수계도 형식보다 마음가짐을 중시했다.
진월 스님은 “고암 스님은 계사의 자비한 눈과 수계자의 간절한 눈이 무념으로 마주볼 때 계가 형성되는 목격전수(目擊傳授)를 강조했다”며 “선가의 이심전심과 같은 원리를 스님은 몸소 삶으로 실천해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님은 고암 스님의 가르침을 “선(禪)ㆍ교(敎)ㆍ율(律)을 등지겸수(等持兼修)하며 중도실상(中道實相)을 지향하고 원융무애한 수행관을 보여준 조화로운 청백가풍”이라 정리했다.
한편, ‘선과 근대한국불교’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비구니 본공선사와 선풍진작’(하춘생), ‘근대선학원의 개혁 인식 연구’(김경집), ‘박중빈의 불교개혁과 선사상’(김방룡), ‘백학명의 선농일치와 근대불교개혁’(김순석), ‘임제의 선사상과 수행’(운월 스님), ‘<열반경>의 선관 소고’(정운 스님) 등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