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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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것에 세상이치 다 들어 있어요”
김해자(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누비 장인 김해자씨의 공방에 들어서자, 깊은 산중의 적막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까지도 다 들릴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김해자씨를 만났다.

“바느질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지만, 수십 년간 누비바느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작업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잘못된 관념들과 자신의 통제되지 않은 부분들이 단순한 작업을 통하여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생각이 단순할수록 사물을 바로 볼 수 있으며, 단순치 못한데서 세상은 어긋나는 것입니다.”

누비는 일반적으로 옷감의 보온을 위해 천 사이에 솜을 넣고 함께 홈질해 맞붙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누비작업은 바늘 땀 간격이 보통 0.3㎝, 0.5㎝, 1.0㎝ 이상으로 구분될 정도로 섬세한 작업인 만큼 정신을 집중시키지 않고 정성을 쏟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집중강도가 다른 사람보다 높았어요. 하루 종일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김해자씨는 누비는 결코 어려운 작업이 아닌데 사람들이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일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라 했다. 누비의 단순함에 반해 누비를 익혔고, 과거 의복을 재현하는데도 공을 들였으며, 승복 누비를 따로 배울 만큼 불심 또한 깊다. 지금은 염색을 직접 하지 않는다면서 15년 세월 동안 낮에는 들에 가서 염재하고 밤에는 바느질을 하고 이렇게 숨가쁘게 살아왔더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이 다 망가졌더란다. 몸이 망가져 본 사람은 그 육신의 아픔 또한 큰 고통임을 알게 된단다.

재봉틀과 양장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져가던 누비가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계기는 1992년 ‘제 17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옛날 무인(武人)들이 입던 ‘철릭’을 출품한 김해자씨가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이전까지 누비는 세상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야로 받아들여졌으며 꾸준하게 누비일을 해온 장인도 거의 없었다. 199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침선장’이 아닌 ‘누비장’으로 새로운 명칭을 붙여달라고 문화재청에 따로 요청했다. 누비의 창의성과 그 가치를 세간에 꾸준히 알린 김해자씨의 노력으로 이제는 누비가 전통 바느질 분야로 자리잡게 됐다. 김해자씨는 누비장으로 지정된 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세계를 누비면서 한국의 전통 옷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경주 탑동의 공방에서 후진양성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나는 누비로 인해 다시 태어났어요. 무명초가 바느질을 해서 세상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또 바느질을 너무 열심히 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요. 단순한 작업을 통해서 스스로 자기 안에 일어나는 모든 번뇌와 망상을 털고 방하착(放下着)하고, 스스로 인욕을 통해서 자기로 태어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 무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후회 없이 즐겁게 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김해자씨는 불교와 인연 맺은 것도 전생의 숙연이라 생각한단다. 본래 가톨릭 신자였는데, 걸핏하면 가위에 눌려 잠을 설치곤 했는데, 하루는 꿈속인데도 입에서 절로 ‘관세음보살’이 흘러나오더란다.

“절에 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범어사 밑에서 혼자 2년을 살았어요. 그때 참회를 위해서 수행을 위해서 절을 참 많이 했지요. 그러다 인연이 닿아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 시봉을 일 년쯤 들었어요. 그리고 수덕사도 인연 있는 절이지요.”

연꽃 속에 넣어서 연꽃 향이 스며든 연차를 내놓았다. 차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가볍지 않았다. 차가 좋다고 했더니 “이날 평생 일만 하다 보니 친구 벗이 있나 이웃이 있나, 살면서 망상 피울 것이 없어 차로 작당을 하면서 소일거리 했지.” 라고 한다. 누비장으로서 일가(一家)를 일구어낸 사람의 고독감을 엿보았다고나 할까.

어떤 전문가들은 누비옷을 두고 한복의 백미라고 할 만큼 아름답고 정교하고 단아하고 멋스럽다고 한다. 누비옷에는 그런 아름다움도 담겨있지만, 전통한국문화의 심오한 뜻과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민족성이 담겨있다고 한다.

“예부터 천(千) 사람의 손으로 천(千) 땀을 뜬 옷을 만들어 입히면 총알도 피해간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자식을 위해서 속옷을 지어 입혔다고 해요. 그리고 부모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속옷을 지으면 정성에 가려서 저승사자가 절대로 못 데려간다고 해요. 이 누비옷은 정성의 산물입니다. 한국인의 정서는 공(功)의 산물이라 할 수 있어요. 한 마음 일으켜서 이루어놓은 것은 누구도 허물어버릴 수 없어요. 스스로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신장(神將)을 만든다고 할 수 있지요.”

“선생님이 지으신 옷을 입으면 신장이 지켜주는 것”과 같다고 했더니 “절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하는 사람의 마음이 정말 사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했다면 신장이 지켜주는 것과 같을 수도 있겠지요.”라고 답했다.

김해자씨는 문하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단다.
“잘 하려고도 하지 말라. 빨리 하려고도 하지 말라. 또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 마음에 조건을 부여하면 업이 되어 묻어나니 티끌 없이 그림자도 묻어나지 않게끔 그렇게 하라. 행위 없는 행위를 하되 하는 마음만은 챙기고 하라.”

옷을 짓다보면 잘 하려고 하는 것도 망상임을 알 수 있단다. 잘 하려고 할 것도 없고 하는 대로 하다보면 다 되어지는 일인데, 한 생각 먼저 일어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김해자씨에게는 바늘을 드는 시간은 기도의 시간이요 수행의 시간이다. 한땀 한땀 헝겊을 누비는 일에 있어 마음이 고요한 경계를 벗어나면 금새 어긋나버리게 되는 것. 벽을 향해 진종일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일이나 무심한 경계에서 바늘과 내가 일체가 되어 하루해가 넘어갈 때까지 헝겊을 누비는 일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해자씨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우리의 전통을 계승발전 시키려는 것도 있지만. 모든 일에 정성을 들이고 인내 할 줄 아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깨우쳐주려는데 있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ㆍ본지논설위원) |
2009-05-25 오후 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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