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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의 고향 여주에 일본 측의 참회를 새긴 기원비를 건립해 눈길을 끌었던 한일불교대회가 원만히 회향됐다.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회장 지관)와 일한불교문화교류협의회(회장 미야바야시 쇼겐)는 5월 12~14일 여주 신륵사 등에서 제30차 한일불교대회를 개최했다.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는 12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환영만찬으로 시작해 일본 측 참가자 120여 명을 포함해 한일 양국의 사부대중 5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에 참석한 일본 불교계 대표자들은 13일 신륵사(주지 세영)에서 세계평화기원대법회를 봉행하고 ‘인류화합공생기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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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승려들은 신륵사에 세워진 기원비에 “불행한 일이 여러 번 있었고 특히 근세에 있어서는 일본이 한국민에게 다대(多大)한 고통을 끼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하여 반성과 참회의 염(念)을 깊이 하고 있습니다”라고 새겼다.
기원비는 높이 3m에 폭 70cm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人類和合共生祈願碑(인류화합공생기원비)’라는 비명을 새기고, 뒷면에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인 미야바야시 쇼겐(宮林昭彦) 스님이 직접 작성한 글을 국한문 혼용과 일본어로 새겼다.
기념비 제막식에 앞서 열린 세계평화기원대법회에서 지관 스님은 대회사를 통해 “참회로부터 시작한 진정성만이 응어리진 마음의 상처를 녹여버릴 수 있는 참 교류이며 대화합의 시작”이라며 “일본 불교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조선침략에 대해 참괴(慙愧)의 마음을 일관되게 공표해온 미야바야시 쇼겐 회장 스님의 대장부적인 결단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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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바야시 쇼겐 스님은 행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1945년 이후 한일 양국 간 많은 교류가 있었음에도 양국 민족간 앙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60여 년동안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양국 관계를 불교도들이 부처님 법에 의지해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기념비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쇼겐 스님은 “한일 양국의 발전적인 관계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가해자ㆍ피해자라는 인식을 버리고 너와 내가 하나라는 정신으로 화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30년째인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는 1977년 1차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주제를 정해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양국 우호 증대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대법회를 봉행해 왔다.
같은 날, 이천 미란다호텔에서 열린 학술세미나는 ‘인류화합의 실성(實成)을 지향하다’를 주제로 개최됐다. 학술세미나에서 한일 불교계는 “무력전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세계공영의 실견(實見)에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다음은 기원비 비문 전문이다.
인류화합공생기원비
한일양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선린(善隣)으로써 깊고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각인(刻印)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사백여 년 전 백제의 성왕(聖王) 재위시에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한국의 역할이 큼은 주지의 사실인 동시에 참으로 양국우호신천의 원점(原點)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간에는 불행한 일이 여러 번 있었고, 특히 근세에 있어서는 일본이 한국민에게 다대(多大)한 고통을 끼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하여 반성(反省)과 참회(懺悔)의 염(念)을 깊이 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늘에 이르도록 양국의 민족이 인난(因難)을 뛰어 넘으며 이어온 우정의 고리를 한층 넓혀가며 인류의 평화를 희망하는 우리들 불교도에게 부과된 무거운 책무를 다하는 증표(證票)로 “인류화합공생기원”의 비를 건립하고 인도상(人道上) 전쟁의 희생자(犧牲者) 죽어간 자의 위령공양(慰靈供養)과 민생애호(民生愛護)의 심정을 바치면서 밝은 내일을 맹서(盟誓)하는 바입니다.
한일ㆍ일한불교문화교류대회 삼십주년을 기념하며 봉미산 신륵사에 건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