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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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이제는 실천할 때
조계종, 23일까지‘승려의 사유재산 종단귀속에 관한 령’입법예고



지난 3월 6일 조계사에서 창립된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는 사후 재산기증 등 승려의 무소유 정신 회복을 주장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지난 3월 6일, 서울 조계사에서 창립법회를 봉행한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의장 진오)는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창립법회 시간에 맞춰 조계사 극락전에 하나둘 모여든 스님 40여 명의 앞에는 종이가 2장씩 놓였고, 스님들은 종이에 무언가를 정성스레 적기 시작했다. 한 장은 세상을 떠난 뒤 장기를 기증한다는 장기기증 서약서였고, 다른 한 장은 사후에 전 재산을 종단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이었다.

유언장을 쓰는 스님들의 모습에 세상이 떠들썩했다. 매스컴은 스님들이 장기기증 서약서와 유언장 쓰는 모습을 보도하며, 종교인의 본분을 되새김 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대중결사체를 구성한 법랍 20~30년의 중진스님들의 커리어가 아니라 그동안 허공의 메아리와도 같던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해 보이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그날 낭독된 결사선언문에서 스님들은 “중생의 고통을 치유해야할 한국불교는 출가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진정한 승가공동체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는 흐려졌다”고 비판했다.

스님들의 지적처럼 중생의 고통을 치유해야할 출가 수행자들 가운데는 환속ㆍ제적ㆍ사망하면서 개인명의의 재산이 본인이나 직계가족, 친적들에게 귀속되면서 종단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삼보정재를 유실케 한 경우도 많았다.

출가수행 중 취득한 재산이더라도 법적인 문제에 걸려 종단은 강 건너 불 보듯 속수무책이었다.

부처님 당시, 출가수행자들에게는 옷 세벌에 발우 하나를 뜻하는 ‘삼의일발(三衣一鉢)’ 또는 ‘육물(六物)’의 소유만이 허락된 무소유에 가까운 생활이었다.

육물은 세벌의 옷[안타회(下衣) ·울다라승(上衣)·승가리(大衣)]과 발우, 깔고 앉는 방석과 물을 걸러 먹는 주머니(녹수낭)를 가리킨다.

시간이 흐르며 생존을 위해 기본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조금 더 허용됐지만, 사타(捨墮)라 해서 계율에서 허락된 이상의 물품을 소유하면 그것들을 4인 이상의 도반들 앞에 내놓고 참회해야 했다.

부처님 당시처럼 무소유를 실천하고, 삼보정재의 유실을 막고자 2007년 9월, 제174회 조계종 중앙종회에서는 승려법 제30조 2항에 ‘사유재산의 종단귀속’을 성문화했으나, 지금까지 이를 뒷받침할 종령이 제정되지 못한 채 유명무실했다.

종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2년여 만에 조계종(총무원장 지관)은 ‘승려 사유재산의 종단 귀속에 관한 령(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23일까지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제정안에 따르면 조계종 스님들은 구족계 수계시를 비롯해 10년마다 있는 분한신고 시, 주지 임명 시, 각급 고시응시 신청 시 등 수시로 사후 개인명의 재산의 종단 출연에 관한 유언장과 사후증여계약서를 제출하게 된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 박종학 팀장은 “절차와 법률적 부분을 고심하다보니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며 “의견수렴 후 종무회의를 거쳐 바로 시행할 예정”이라 말했다.

민법상 스님들이 입적할 경우 친족들이 사유재산에 대한 우선권을 갖고 있어 이를 무리 없이 종단에 귀속시키려는 절차 마련에 시간이 걸렸다는 해명이다.

승려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던 중앙종회의원 법진 스님은 “출가수행자에게 무소유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사유재산의 귀속을 위한 제정안이 정착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다소 내용이 미비하더라도 이번 제정안을 계기로 차후에 보완하면서 제정안을 관철시켰던 본래의 정신만은 지켜나가자”고 환영했다.

스님의 우려처럼 사유재산의 종단 귀속 제도가 정착되려면 갈 길이 멀다. 당장 개정안이 종회에서 통과될 때 귀속된 사유재산을 스님들의 노후복지와 교육기금으로 사용하자고 했으나, 승려노후복지법이 종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것은 큰 걸림돌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스님들이 소유욕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부실한 노후대책의 영향이 크다”며 “사유재산 종단 귀속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종령 시행에 맞춰 6월 종회에서 승려노후복지법이 통과돼야 구색을 갖출 것”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사유재산 귀속에 관한 약정서 작성을 하지 않을시 패널티를 주는 처벌조항 등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보인다.

사유재산에 대한 사찰 관리자의 전횡이나 임의 사용, 기타 임의 증여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별도의 법인을 설립해 편법적으로 종단 귀속을 회피하는 점 등도 고려해볼 만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려 사유재산의 종단 귀속에 관한 령이 종단과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에 가져다 주는 이점은 크다.

사유재산의 귀속으로 종단에 형성되는 재산은 스님들의 노후와 교육에 쓰이게 된다.

또 일부 스님들이 사찰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오해가 불식되면서 스님과 신도간의 불신의 벽이 허물어지고 한층 더 깊은 신뢰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무소유의 삶을 원칙으로 살아가는 수행자의 출가정신을 의무 조항으로 성문화한 것은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일 호기라는 평가다.

승려 사유재산의 종단 귀속 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둔 지금, 무소유의 제도화가 생활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5-11 오후 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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