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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천수천안의 부처님처럼
천개의 눈을 바쳐 재료를 모으고 천개의 손을 바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당신을 위한 밥상을 차리려 합니다.’
산당 임지호씨의 가슴에 새겨진 글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 요리 재료가 되기에 임지호씨의 눈길이 머무는 것은 먹거리로 변해버리니 그는 천개의 눈을 가진 것과 다름없다. 또 장터에서 혹은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여 생명에너지를 주고 있으니 천개의 손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양평 산자락에 위치한 밥집 산당(山堂)을 찾았다. 산당 주인인 임지호씨는 자연 속에서 식재료를 구하여 요리하는 자연요리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그의 명성은 높아 UN한국음식축제, 갤리포니아 사찰음식퍼포먼스,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시연회, 아르헨티나 수교 40주년 기념한국 음식전, 베네수엘라 수교 40주년 한국 음식전 등에 참가하여 한국 전통음식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풍부한 식재료입니다. 식재료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푸드마일(Food Miles)이라 하는데, 식재료의 이동거리가 길면 길수록 신선도가 떨어지고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식재료의 이동거리를 줄여야 하고 그 방법으로는 “우리 땅에서 채취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라 한다.
황새냉이, 쑥, 석창포, 들국화, 산머루, 산다래, 측백나무, 망초, 지칭개, 나락나물, 코딱지풀, 쑥부쟁이, 엄나무, 냉이꽃, 달래꽃, 민들레, 제비꽃 등등 땅에 낮게 엎드린 들풀부터 해서 계절에 따라 피고지는 꽃까지 모든 것이 그의 요리재료가 된다. 우선 그의 요리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재료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매우 엄했다. 아버지는 천자문을 외우지 못하거나 누나들과 다투기라도 한 날에는 산으로 올려보냈다. 아버지는 벌로서 내린 것인데 나무를 하고 약초 캐는 그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그때 자연과 교감을 나눈 것이 평생의 스승이 되어주었으며, 음식의 색감과 모양새 등 그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라 한다.
그는 열두 살에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면서 음식을 배웠는데, 그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스승이라 하니 임지호씨는 세상 모든 사람이 스승이요 세상만물이 스승인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곧 수행이며, 음식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수행자와 같습니다. 풀 한포기, 작은 나무열매 등 모두 자연에서 뭘 얻을 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하고 또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임지호씨의 감사 요리법’이다. 그의 요리는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음식을 할 때 전혀 맛을 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맛을 보지 않아도 음식의 맛이 일정한 것은 요리를 수행으로 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다.
임지호씨는 들판에 지천으로 나있는 풀들을 알고 싶어 온 몸으로 테스트 해보았고, 독초를 먹고 쓰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풀마다 약간의 독소는 있지만 요리를 통해서 중화되는 것이며, 매실청 조선간장 들기름 참기름 등은 해독작용을 한단다.
임지호씨는 ‘나물예찬론자’다. 채소 하나하나에도 각각의 특징과 효험이 있지만 거기에 갖은 양념을 보태면 또 다른 효과를 주는 것이 바로 나물이란다.
“샐러드하면 서양요리만 생각하지만, 우리도 옛날에 반찬이 없으면 밭에 나가 풀 뜯어다가 겉절이 많이 해서 먹었는데, 그게 바로 샐러드이지. 자연과 가까우면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져요. 현대인들은 자연과 점점 멀어지고 있어 잃는 게 많아요.”
한국 음식의 특징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음식에 정신세계를 투영시키는 것이라 한다.
“우리 음식에는 정성과 손끝 에너지가 담겨있어요.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례(祭禮)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에게 올리는 음식은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제례문화와 음식은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제례 음식에는 음양오행이 있고, 사람이 사는 질서가 있고, 위아래 질서와 법도가 있어요.”
그는 ‘도(道)와 예(禮)가 어우러진 것’이 음식이라 생각하기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도(道)로서 펼치고, 먹는 사람은 예(禮)로서 받는 것이 좋은 것”이라 한다.
“자기수행으로 삼아서 저의 음식 패턴을 지켜왔어요. 음식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을 편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요리사의 노동의 가치는 먹는 사람에게 생명에너지를 주고 또 그만큼의 기쁨이 돌아오는데, 몸을 아껴서는 안 되지요. 밥상은 그 사람의 생명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삶과 미래가 이 담겨있어요.”
임지호씨는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가면 여러 사찰을 돌면서 대중공양을 올렸다. 스님들이 좋아하는 짜장면 공양을 비롯하여 노인요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공양, 양평 5일장에 갔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장터 할머니들을 위한 묵밥 공양 등 그는 많은 밥보시를 행하였다. 자신이 떠돌이 생활을 할 때 거두어두고 먹여 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갚는 그만의 회향법이다.
“맛이란 예리한 칼날 같아서 청정한 마음으로 다루지 않으면 몸을 다치게 해요. 단맛은 공격적이지만 쓰면서 단 맛은 몸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이 제대로 모이기만 하면 밥상은 그대로 약상이 됩니다. 약선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떠돌면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지요. 병을 이긴다는 것은 자연 본연의 형태로 돌아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가 요리사의 기본 소양으로 꼽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동의 능력을 운명으로 알아 즐거움을 잃지 않고 일하라. 그리고 사물을 볼 때 경박한 눈이 아니라 심미적 일체로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가 만드는 요리에는 정해진 틀이 없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요리가 된다. ‘몽땅연필’ ‘어머니의 고랑’ ‘세상을 바라보는 동굴 속의 눈’ ‘섬’ ‘풀로 만든 해우소’ ‘다음 날’ ‘공(空)’ ‘빨간 머리 앤’ 등 얼핏 들으면 시(詩) 제목 같은데, 그가 만든 음식에 붙인 이름이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요리에 걸맞는 이름들이다.
‘부처님오신날’ 을 기념하는 특별한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었다. 밀가루에 콩가루와 느릅나무껍질을 넣고 반죽하여 기름에 튀겨내었다. 활짝 핀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 위에 흰색 제비꽃과 분홍 벚꽃과 초록 느릅나뭇잎을 올려 화엄세계를 만들었다. 그 요리에 붙여진 이름은 <우주, 자아 속의 부처>이다. 먹어보라고 권하는데 모양이 흐트러질까 아까워서 먹을 수 없다고 했더니 “이것도 다 허상이에요. 허상인데 아까울 것이 뭐 있느냐” 고 한다.
‘자연을 깊이 관조하다보면 자연이 절로 스승이 되어준다’는 그의 말을 언제쯤 이해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