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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스님 직접 쓴 ‘경허집’ 월정사로 돌아와
소장자 김민영 선생, 월정사에 무상기증
한암 스님이 직접 쓴 경허집. 일본강점기 때 사용하던 기름 메긴 미농지에 87장 174쪽 규모.


한국선의 중흥조 경허 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법제자 한암 스님(1876~1951)의 손으로 엮은 자료가 오대산 월정사로 돌아왔다.

또 자료의 영인본이 출간(민족사 刊)돼 경허 선사 및 한암 스님에 대한 연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암 스님 나이 56세인 1931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만든 자료는, 서지가 김민영 선생이 고서점에서 구입해 소장하던 것으로 한암 스님 탄신 134주기를 맞아 월정사에 무상기증됐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4월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암선사 육필본 <경허집>’의 월정사 기증과 영인본 간행 등을 발표했다.

한암 스님 육필본 경허집 모습. 스님의 단아하고 정갈한 필체가 돋보인다.


정념 스님은 “한암 스님은 경허 선사의 법어와 기문(記文), 서간(書簡), 행장(行狀), 영찬(影讚) 등을 각각 분류해 직접 세필(細筆)로 썼다”며 “특히 한암 스님이 쓴 경허선사의 행장은 한문본으로는 유일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해지는 <경허집>은 1943년 중앙선원(선학원)에서 활자본으로 만공 스님의 청으로 만해 스님이 편집했다.

민족사 윤창화 대표는 “한암 스님의 <경허집>은 선학원판보다 12년 앞섰다. 한암 스님본은 선학원판의 저본이 됐을 것”이라며 “선학원판에 한암 스님 본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경허 화상의 법화(法化)를 배움은 옳으나 (무애행으로 유명했던 경허) 화상의 행화(行化)를 배우면 안된다’는 문구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한암 스님 육필본 경허집 모습.


하지만 한암 스님은 “법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무애행)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적어 경허의 진면목을 바로 볼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한암 스님은 역사 서술은 가감첨삭 없이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라 생각했다. 스님의 육필본에 담긴 ‘선사경허화상행장’은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한암 스님 육필본 <경허집>의 기증식은 한암 스님 탄신 134주기 탄신 다례재가 열릴 4월 22일 오대산 월정사에서 개최된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4-20 오후 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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