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벚꽃 길을 떠올리며 찾아간 쌍계사. 아쉽게도 꽃은 지고 없다. 나뭇가지엔 파란 잎이 돋고, 길 위에 떨어진 하얀 꽃잎만 봄바람에 흩날린다. 하얀 꽃 길 끝에 쌍계사가 보인다. 아직은 힘없는 개울물이 겨우겨우 개울을 내려가고, 듬성듬성 흐르는 개울물 속엔 작은 물고기들이 와있다.
봄볕에 나툰 마애불 어깨 위엔 기도하던 동전 한 닢이 간절하게 반짝이고, 도량엔 부처님오신날 기다리는 오색 연등이 가득하다. 부처님 오신 까닭처럼 연등마다 이유가 있고, 눈 감은 석불의 미소 뒤에는 간절한 기도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작은 종소리가 저녁예불을 알린다. 종루에서 사물(四物)을 울린 스님들이 법당으로 오른다. 생각이 생각을 따라 오르고, 인연이 인연을 따라 오른다. 법당에 모인 대중은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할 것을 또 다시 약속하고, 부처님은 그 약속을 또 받는다.
저녁을 기다리는 석등이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꽃을 보고 싶었던 중생은 꽃이 진 자리가 아쉽고, 불법(佛法)을 만나고 싶은 중생은 지금 이 자리가 아쉽기만 하다. 법당에서 지심귀명례가 또 한 번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