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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이랑을 일구며 넘나든
천만 년 세월동안
얼마나 연모해 온 오늘입니까?
먼 듯 가까운 듯 당신을 꿈꾸어 온
별빛 벌판에서
말없이 몰현금의 영혼을 탄주합니다.
신령스러운 꽃들이
가슴에서 두근거리며
마구 피어납니다.
바다에서 길이 열리듯
당신 안으로 걸어 들어가
허공이 됩니다.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권수형씨의 <당신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시(詩) 전문(全文)이다.
일회용 같은 사랑이 난무하고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 시대에 애틋한 ‘부부의 정’으로 세인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서울대 불이회 회장이자 치과 교수인 배광식(불명 경주)씨와 시인 권정자(불명 수형)씨가 그 주인공이다. 남편의 회갑을 맞이하여 아내가 <당신을 만나서 행복합니다>라는 시집을 헌정하여 우리 사회에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배광식씨는 금강카페를 이끌어가는 카페지기이기도 한데, 공주 영평사에서 ‘금강카페 정진모임’이 있다고 해서 동행했다. 먼저 ‘금강카페’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었다.
배회장과 수형보살은 청화큰스님과의 만남을 두고 일생일대의 귀한 연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스승의 가르침 그대로 실천수행하고 있다. 배회장은 청화 스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불교포교를 위해 4개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라는 업무도 만만치 않을 텐데, 하루에 두 시간 넘게 홈페이지와 카페를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그 열정에 놀라울 뿐이다. 다음금강카페(cafe.daum.net/vajra)와 네이버금강카페(cafe.naver.com/huineng)는 각 회원 수가 오천 명을 넘어섰으며, 오프라인상에서도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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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포교사인 배회장은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하여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 달마대사의 <소실육문>을 영역하여 금강까페에 올리고 있으며 책으로도 발간할 계획이란다. 그 외에도 청화 스님을 비롯하여 한국 고승들의 법문을 영역해서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 일을 하는데 승속이 따로 없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생각이다.
배회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보리회>를 창립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사상강좌를 열었을 만큼 불교에 심취했다. 고등학교 때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의 지도 아래 열흘간의 출가에 들어갔는데 그때 이미 발심과 동시에 보리심을 보았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신행활동을 했는데 그때 삼보법회에서 운허 스님의 <능엄경>과 <금강경>을 들으면서 불교가 저의 이상향이 되었어요. 문학에도 욕심을 내어 대학시절 문학 써클 활동도 했었는데, 그곳에서 평생도반인 수형보살을 만났습니다.”
피부가 맑고 동안(童顔)을 간직한 수형보살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만나 칠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어요. 제가 불교를 알기 전에는 제 성질이 참으로 대단했어요. 제가 화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데도 흔들리지 않고 다 받아주는 경주거사를 보면서 불교가 참으로 매력 있게 다가왔어요. 결혼할 즈음에는 나도 모르게 열혈 불자가 되어 있더군요.”
수형보살은 결혼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보다는 도반으로 혹은 스승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녀의 시 중 ‘나는 꽃나무.... 나를 나이게 하는/ 꽃피우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한 구절을 보아도 남편에 대한 존경심과 옆에 있어도 그리워하는 애절함을 읽을 수 있다.
“수형보살은 정말로 열심히 수행합니다. 기도하고 정진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해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수행을 하면 할수록 갈증이 난다면서 출가하여 오롯이 수행만 하겠다’고 하데요. 출가하여 지금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다면 출가를 허락하겠지만 내 곁을 떠나서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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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보살은 지금도 새벽 두 세 시면 일어나 예불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선학원에서 천일기도를 입재하고서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참여했을 정도로 신심이 강하다. 수형보살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녀의 몸과 마음은 24시간 기도와 수행 속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에게 기도는 숨 쉬는 것과 같아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아요. 열심히 기도하는 저를 두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그렇게 절실하게 기도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들처럼 그렇게 수행하고 싶어서 내 환경이 허락하는 한 그것에 맞추어서 열심히 할 뿐입니다.”
평생의 스승이셨던 청화 큰스님은 배회장과 수형보살을 두고 전생에 도반으로 같이 수행한 그런 사이라고 하더란다.
수형보살은 원래 문재가 뛰어나서 숙명여고 때 이미 이화여대 주최 전국백일장대회에서 즉흥시조로 당선되었고, 이화여대 재학시절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을 하여 시작(詩作)활동을 했다. 청화 큰스님께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태안사를 드나들다가 <금륜회보>를 만들었으며 ‘금륜출판사’를 등록하여 청화 큰스님의 저서인 <전통선의 향훈>과 <약사경>을 발간했다. 또 대중불교잡지 <광륜>을 창간하여 야무지고 알찬 잡지로 인정받았다. 수형보살에게 있어 글쓰기 또한 수행인 것이다.
부부는 청화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염불선’을 수행하고 있으며,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신채도 금하고 있다. 다음 생에는 출가인으로 살고 싶기에 그들은 수행자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한지도 오래되었다.
이들을 주고 ‘금강까페’의 도반들은 “머리만 깎지 않았을 뿐이지 출가자의 삶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출가를 결심했던 사람들도 이들 부부가 본보기가 되어 결혼을 했어도 얼마든지 도반으로 함께 하면서 수행할 수 있음을 보았기에 마음을 고쳐먹기도 한단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부부의 인연은 팔천겁(八千劫)이라 했으니 그 연이 얼마나 지중한지 모른다. 그 지중한 연을 이어 도반으로 또 서로의 스승으로 살 수 있는 그 비결을 물었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비결이랄 것도 없어요. 부처님 가르침에 다 나와 있는걸요......”
영평사의 밤은 깊어가고, 매화향기는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났다.
코끝에 와 닿는 향을 보려고 주변을 살피다 밤하늘의 별들과 눈마춤 했다. 저 별빛은 몇 억 광년을 달려와서 내 눈과 마주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