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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은 백제 수도’ 두고 첨예한 논쟁
익산 왕궁리 유적 국제학술대회서 갑론을박
익산 왕궁리 5층석탑


“익산은 백제의 수도다?” “아니다. 작은 서울이었다.”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123호) 등 다수의 문화재가 출토돼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온 익산 왕궁리 유적을 두고 한ㆍ중ㆍ일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은 4월 9~10일 원광대 60주년 기념관에서 ‘익산 왕궁리유적의 조사 성과와 의의’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학술대회에는 이건무 문화재청장,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비롯해 나용호 원광대 총장, 이한수 익산시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김삼룡 前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은 ‘익산문화권에서 왕궁리유적의 위치’를 주제로 기조강연했다. 김 前 소장은 “익산은 백제 무왕의 천도지로 경영됐고, 핵심적인 유적이 왕궁성”이라고 설명했다.

최완규 교수(원광대)는 주제발표 ‘고대 익산과 왕궁성’에서 “익산 천도는 무왕 이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주성 교수(전주교대)는 ‘7세기 백제에서의 익산 위상의 변화’를 통해 “무왕이 익산을 수도와 같이 취급해 수도의 행정구역인 별부(別府)를 설치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참석자들은 천도 여부와 시기 등에 이견이 있을 뿐 왕궁리 유적이 왕궁 혹은 그에 버금가는 유적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 했다.

한편, 공꿔치앙 연구원(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은 “익산 왕궁성의 원림 유적이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가지런하며 깊은 문화적 소양과 우수한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백제문화의 정수”라고 평가했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4-08 오후 2: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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