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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을 한달 여 앞둔 때, 전국 사찰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손끝을 빨갛게 물들이며 연등 만들기가 한창이다.
경내 한켠에서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선남선녀들이 봉축행사에 선보일 율동을 준비하는 광경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봉축을 앞둔 사찰 풍경은 극락이 따로 없다.
바깥세상은 어떠한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사태는 세계 경기를 공황상태에 빠트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주가와 환율은 요동 치고, 실물경기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살기 힘들다”, “어렵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 지도 오래다.
생계가 어렵고,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봄은 봄이 아니다(春來不似春)’.
산천초목이 만개해 만물이 활기찬 5월이지만 삶이 힘든 이들에게 5월은 그저 괴로운 여느 달이다.
불교계의 따뜻한 관심이 없다면 모두가 행복해야 할 부처님오신날이 그들에게는 그저 고단한 하루이기 십상이다.
교리상으로 보면 일주문, 해탈문을 넘어선 사찰 경내는 불국토와 진배없다. 전국 방방곡곡에 사찰이 세워진 것은 처처마다 부처님 법을 전파하고 중생에게 불국토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세상의 풍파에 아랑곳없이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며 법열과 신심으로 연꽃잎을 마는 모습들도 수행과 포교의 다른 방편인 것은 틀림없다.
청원행사(?~740) 스님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를 물었을 때, 청원행사 스님이 “요즘 시장의 쌀값이 얼마이더냐?”라고 답했다.
청원행사 스님이 시장의 쌀값 운운한 것은 불법의 대의가 시장의 쌀값에 달렸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쌀값을 염려하는 자비심에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월 24일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위원장 지관, 이하 봉축위)가 발표한 200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 일정에는 축제 속에서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하려는 봉축위의 고민과 배려가 가득 담겨있었다.
◇어려운 이웃위해 心燈 밝히는 봉축행사 돼야
올해 봉축행사는 ‘나누는 기쁨 함께하는 세상’이라는 표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이웃과 나누며 함께 극복하는 노력을 모아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봉축행사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부처님오신날 △젊은 층과 함께하는 부처님오신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가는 부처님오신날 △세계인과 함께하는 부처님오신날로 나뉘어 마련됐다.
봉축위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부처님오신날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봉축행사를 정점으로 각 지역의 어려운 이웃돕기와 교도소 양로원 군부대 등 위문행사, 사찰별 결연을 통한 소년ㆍ소녀가장 돕기, 독거노인 돕기 다문화가정 돕기 등을 독려하는 한편, 조계종 자비나눔 운동을 활용한 이웃돕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특히 저소득ㆍ실직가정을 위한 자비나눔 운동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프로그램들은 두 손을 펴고 저잣거리에 드는 ‘입전수수(立廛垂手)’를 실천하는 모양새다.
저소득ㆍ실직가정을 위한 ‘희망의 등달기’를 통해 모아지는 등공양비 중 1000원씩은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27일 조계종 전국 사찰들이 1배 108배 모금법회를 봉행한 것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함이었다.
자비나눔을 통한 이웃돕기를 중심으로 젊은 불자에 대한 격려와 배려, 가로연등 정비에 중점을 둔 전통문화 계승,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 등을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와 함께하는 봉축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 봉축위의 계획이다.
◇연등축제 또 하나의 나눔 마당
봉축 분위기는 4월 14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에서 봉축탑을 점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연등축제가 열리는 26일에는 오후 1시 장충체육관에서 어울림마당이, 오후 4시 30분 동국대에서 화합한마당이 있은 후 오후 6~11시에는 조계사 앞까지 연등행렬이 있을 예정이다.
예년과 달리 출발지가 동국대로 변경되면서 연등행렬 구간은 700미터 가량 늘어났다.
봉축위는 바뀐 연등행렬을 여법히 봉행하고자 동국대와 장충체육관으로 대중을 양분하고, 장엄물 등은 동대문운동장 인근에서 합류시키기로 했다.
또 종각과 탑골공원 인근에만 배치했던 관람석을 종로 전 구간으로 확대해 설치할 예정이다.
관람석 사이로 설치된 각 신행단체의 부스에서는 거리포교를 펼치던 신행단체 관계자들이 연등행렬 본대 도착과 함께 행렬에 동참하는 새로운 시도도 준비됐다.
연등축제 당일에는 12시부터 조계사 앞길에서 불교문화마당도 펼쳐진다. 전날인 25일 오후 7시부터는 연등축제 전야제로 조계사 앞에서 연등놀이도 기획됐다.
이와 함께 9일에는 청계천 연등전시가, 24일~5월 5일까지 삼성동 봉은사에서는 전통등전시회가 열린다.
부처님오신날이면 각 사찰마다 봉축 연등 모연을 한다. 이 시기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빈녀 난타의 사연을 담은 ‘빈자일등(貧者一燈)’ 일화다.
가진 것 하나 없던 난타가 부처님에게 등공양을 올릴 수 있던 것은 난타의 구걸에 한 푼을 적선한 이와 기름을 사러간 난타를 갸륵히 여겨 한 푼 어치보다 훨씬 많은 기름을 주었던 기름집 주인의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한 바람 속에서도 유독 꺼지지 않고 환히 어둠을 비출 수 있었던 빈녀 난타의 등(燈)은 그녀의 신심 뿐 아니라, 그녀를 도운 이들의 자비와 보살행이 있어 가능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우리 시대 제2, 제3의 난타의 출현을 위한 불교계의 자비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