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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漢岩ㆍ1876~1951) 스님의 불교사상을 배울 수 있는 ‘한암 대종사 수행학림’이 오대산 상원사에서 마련된다.
4월 28~30일 열리는 이번 수행학림은 한암 스님의 사상과 생애를 재조명하고 한국불교의 바람직한 수행자상을 정립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월정사 상원사 사자암 적멸보궁에서 진행하는 수행 프로그램으로 수좌 스님 지도에 따라 승가오칙(선, 간경, 염불, 의식, 가람수호)에 입각해 자기 내면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다.
1897년 금강산을 유람하며 기암절벽 바위 하나하나가 부처와 보살의 얼굴을 닮은 것을 보고 출가한 한암 스님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도를 시작해 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후 전국의 고승을 찾아 구도의 길에 올랐다.
1899년에는 정암사 수도암에서 경허(鏡虛) 스님으로부터 ‘금강경’ 사구게를 듣고 도를 깨달았으며 1905년 통도사 내원선원 조실로 추대돼 후학을 지도했고 1910년 평안북도 맹산군 우두암에 들어가 수행에 정진했다.
한암 스님은 50세가 되던 1925년 서울 봉은사 조실 스님으로 있다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며, 오대산에서 27년간 두문불출하며 수행했다.
오직 구도(求道)를 위한 수행정진에만 몰두했던 한암 스님은 6ㆍ25전쟁 때 오대산의 고찰 상원사를 지켜낸 일로도 유명하다.
1·4후퇴 때 국군이 퇴각하면서 상원사를 불태우려 하자 손수 가사와 장삼을 수(受)하고 법당에 들어가 불상 앞에 정좌한 뒤 “불을 지르라”고 권해 이에 감명을 받은 국군은 문짝만 떼어 내어 불태운 뒤 절을 떠난 일화다.
1941년 조계종이 출범하자 초대종정으로 추대된 스님은 이야기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암 스님은 ‘일발록(一鉢錄)’ 1권을 남겼는데 이마저 1947년 봄, 상원사 화재로 소실됐다. 이 책은 후에 1995년 월정사 주지 현해 스님이 문도들의 뜻을 모아 ‘한암일발록(漢岩一鉢錄)’ 으로 재간행했다. 제자로는 보문(普門), 난암(煖岩), 탄허(呑虛) 등이 있다. 상원사(033)332-6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