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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발견시 드러난 기단부 구조로, 이와 유사한 왕궁리 5층석탑이 백제 석탑인 것이 밝혀졌다. 백제 석탑에 관한 연구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
익산 미륵사지석탑에서 1월 14일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후, 세간의 이목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에 집중돼 있다.
그동안 학계는 백제석탑의 시작을 7세기 이후로 추정해 왔다. 미륵사지 사리봉안기에 쓰인 639년은 석탑의 완성이 아닌 기단부가 완성된 시기라는 점 등을 이유로 백제계 석탑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는 3월 21일 국민대 경상관에서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물에 대한 종합적 검토’를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수태 교수(충남대), 이한상 교수(대전대), 김주성 교수(전주교대), 이송란 학예연구사(문화재청) 등이 참석한 행사에서 한정호 연구원(동국대 경주캠퍼스박물관)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과 사리장엄 재검토’를 발표했다.
한 연구원은 “사리기가 봉안된 639년은 기단부가 완성된 시기일 뿐”이라며 “미륵사지 사리장엄구의 발견으로 백제 석탑의 시작을 7세기로 보던 종래의 시각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 연구원은 익산 왕궁리 5층석탑이 백제 목탑을 해체하고 백제 양식에 따라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이라는 학계의 ‘백제계 석탑설’을 뒤집고, 익산 왕궁리 5층석탑은 백제시대 건축된 백제석탑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미륵사지석탑, 왕궁리 5층석탑, 정림사석탑 등을 비교한 한정호 연구원은 석탑 내부구조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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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원은 “1965년 석탑해체 보수 당시 드러난 왕궁리 5층석탑의 기단 내부구조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내부구조의 축소판”이라며 “기단부의 내부구조로 봤을 때, 미륵사지석탑은 물론, 왕궁리 5층석탑도 백제시기에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정호 연구원은 “미륵사지석탑, 정림사석탑, 왕궁리 5층석탑이 조성된 선후는 차치하고 이 시기에 백제에서 석탑이 계속 세워졌던 것은 분명하다”며 “백제의 아비지가 신라로 옮겨가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던 이유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등 불교성보에 대한 연구자의 신앙적 접근을 강조한 지적도 있었다.
종합토론에서 조경철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는 김수태 교수(충남대)의 발표문 ‘백제 무왕대의 미륵사 석탑 사리봉안’에서 <금광명경>과 <법화경>에 대한 서술과 무왕이 미륵임을 자처했다는 표현 등을 문제 삼았다.
조 박사는 “불교유물의 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교적 이해가 바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