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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육 후득도 체계 정립 못한 것 가장 아쉬워”
5년 임기 마치고 퇴임하는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


청화 스님


“종단 소임도 놓았으니 이제 시작(詩作)에 몰두해 시심에 젖어 지내렵니다.”

조계종 교육수장으로 5년간 일관된 기조로 종단 승가교육을 개선해 온 교육원장 청화 스님이 임기를 마치고 3월 24일 퇴임한다.

2004년 4월 제5대 교육원장에 취임했던 스님은 5년 임기를 원만히 회향한 첫 교육원장이다.

퇴임에 앞서 18일 교육원장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스님은 “떠날 때는 말없이 가야하는데 교육원 소임자들이 굳이 간담회를 마련해 사양하지 않고 자리했다”며 “모두 실무자들이 이뤄놓은 것이지 저는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청화 스님은 재임 중 남행자 856명 여행자 544명을 교육ㆍ수료케 해 1400명이 사미ㆍ사미니계를 수계해 종단의 출가자로 첫발을 내딛게 했다. 또 1490명이 기본교육을 이수하는 등 도제양성에 힘썼다.

이외에도 스님은 각급 승가고시체계를 확립하고 종단 스님들의 재교육 과정인 연수 및 직무직능교육을 체계화해 정착시켰다.

현종 스님(불학연구소장)은 “청화 스님은 승가교육체계 내실화를 통해 종단 도제양성의 방향을 제시하고, 종단의 사상적 근간 및 정체성 확립에 힘써온 분”이라고 말했다.

청화 스님은 “소임을 보면서 늘 마음에 두고 챙겼던 것은 현재의 교육제도와 법이 1994년 종단개혁의 성과물이라는 점”이라며 “(현재 종단의 교육제도가) 비록 만족할 만한 상태는 아니라 해도 많은 논란 속에서 마련된 것 인만큼 그 틀이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님은 “故 법장 스님 총무원장 시절 ‘선교육 후득도’를 위한 추진위를 구성해 결론도 도출했었으나 종회안건 상정도 못하고 폐기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술회했다.

승려시인인 청화 스님은 퇴임에 즈음해 등단 31년 만에 첫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펴냈다.

스님은 “문학 자체가 출가 동기였다”며 “흥건한 시심(詩心)에 젖어 시를 쓰면서도 늘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선지식들이 남긴 게송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나름 의미를 부여하며 시를 써 왔다”고 시작(詩作)의 배경을 설명했다.

스님의 퇴임법회는 24일 오후 5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출판기념회와 함께 봉행된다.


#청화 스님은 1964년 화계사에서 혜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2년 해인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채석장 풍경’이 당선돼 등단한 스님은 1981년 조계종 총무원 교육국장, 1982년 총무원장 사서, 1994년 초심호계위원장, 11대 중앙종회 차석부의장, 12대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13대 종회의원 등을 을 역임했다.

또 1986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공동의장, 실천불교승가회 의장,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의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대외적인 활동에도 앞장서왔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3-20 오전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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