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이란 최초의 여성판사를 지낸 시린 에바디(61) 인권변호사가 제13회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ㆍ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는 3월 4일 정오 기자회견을 갖고 "약자의 인권개선과 세계평화를 위해 열정과 헌신을 보여온 시린 에바디 변호사를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만해대상심사위원장인 양승태 대법관은 "에바디는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여성 참정권을 제한하는 이란의 법 개정에도 힘을 쏟고 있다"며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또 실천부문 대상에 이소선 민주화운동유가족 협의회 고문, 문학부문 대상에 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씨와 김종길 시인, 학술부문 대상에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 포교부문 대상에 빤냐와로 스님을 각각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8월 12일 강원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만해축전에서 거행된다.
다음은 2009년도 만해대상 수상자의 주요 공적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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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시린 에바디
생년월일 : 1947년 3월 1일(61세)
시린 에바디(62) 변호사는 이란 최초의 여성판사,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세계적 인물로 부상했지만, 정작 그의 조국 이란에서는 여전히 반체제 요주의 인물이자 정권의 눈엣가시다. 그는 평생을 엄청난 용기와 두려움이 수반되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 뒤에도 에바디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그가 이끄는 테헤란 시내 ‘지뢰제거참여센터’와 ‘인권을 지키는 사람들’ 사무실에 경찰이 들이닥쳐 이를 폐쇄했다. 동료들과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식을 치를 예정이던 에바디는 경찰에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1970년대 중반 파흘라비(팔레비) 왕조 시절 판사로 일했던 에바디는 부패한 왕정에 맞서 이슬람혁명에 동참했으나 곧 호메이니식 극단주의에 의해 판사임용 5년 만에 강제퇴직된다. 이후 그는 인권운동에 투신한다. 투옥되고 암살 위협을 당하기 수차례.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보수파정권이 들어선 뒤 탄압의 강도는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2006년엔 익명의 살해 협박 편지를 받았고, 당국으로부터 “불법활동을 중단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외국 언론 접촉도 금지됐다. 그는“인권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란과 같은 경직된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그 길로 나가는 게 두렵지 않다. 이제는 두려움을 다스릴 줄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슬람 율법을 앞세운 神政 체제의 이란에서 그는 특히 여성과 어린이 등 억압받는 인권의 향상을 위해 앞장서 서방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이란 인권 운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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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김종길(金宗吉, 본명 金致逵)
소 속 : 현재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생년월일 : 1926년 11월 5일(82세)
김종길 선생은 시인이자 영문학자이면서도 이에 못지 않는 동양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언제나 동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 없이 또 시창작과 이론을 조화롭게 상조시키면서 우리 현대시의 나갈 길을 깊은 문학사적 통찰력으로 가늠해내었다. 이는 선비정신과 결연한 역사의식으로 민족의 미래를 예언자적 자세로 통찰한 매천과 만해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청마와 지훈의 생명의지와 시의 위의를 체득해나가는 의연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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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로버트 하스(Robert Hass)
소 속 : 미국 버클리대학 영문학과 교수
생년월일 : 1941년 3월 1일(67세)
시인 로버트 하스는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두 차례나 연이어 추대된 세계적인 시인이다. 로버트 하스 시인은 인간 언어의 생명력을 시를 통해 새롭게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생태주의적 관점에 천착해 가는 다양한 시들을 발표하여 현대 영시문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되는 생존 시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2005년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에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현실과 문학의 경향을 직접 체험하였으며 그 뒤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문학 강연회를 가진 바 있다. 로버트 하스 시인은 한국의 저명한 시인들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에도 적극성을 보이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만해문학의 평화사상 생명사상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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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이소선(李小仙)
생년월일 : 1929년 11월 9일(79세)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소선 여사는 평생을 노동운동의 대모로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이소선 여사는 알려진 대로 1970년 11월 13일 서울의 평화시장 앞길에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 구현과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정을 나누면서 사는 민주복지사회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다, 마침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분신자결한 전태일의 어머니다.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발전은 물론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해방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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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빤냐와로(智秀) 스님(본명: 에드워드 윈스톤)
직 함 : 불교교육협회 회장. 웹사이트 ‘www.buddhanet.net 웹마스터
생년월일 : 1940년 7월 25일(68세)
빤냐와로 스님은 인터넷 포교의 첨병이라 할수 있는 불교전문 영문종합 웹사이트 ‘붓다넷 넷(http://www.buddhanet.net)’을 운영하고 있는 웹마스터다.
스님이 운영하는 붓다넷 넷은 1991년에 등록하여 준비과정을 거쳐서 1992년에 오픈해서 2009년 2월 현재, 1일 평균 단순방문객은 1백만 명 이상이며, 필요에 의한 복사 프린트를 하는 전문 단골방문객은 1일 평균 15만 명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대 최고의 불교전문 인터넷 웹사이트이다.
빤냐와로 스님은 인터넷을 통한 불교포교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았다. 무엇보다도 ‘붓다넷 넷’ 웹사이트의 콘텐츠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불교교육과 불교의 각 분야에 대한 정보내용이 알차다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전통과 원시 근본불교에서 21세기의 신 불교에 이르기까지 망라한 정보와 불교의 모든 영역에 관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붓다넷 넷’은 비영리회사인 ‘佛法敎育協會(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Inc.)’에서 운영하고 하고 있다. ‘붓다넷 넷’은 불교교육 자료와 불교정보가 주내용이다.
스님은 2005년부터 이곳에 보리수삼림수도원(Bodhi Tree Forest Monastery)을 설립하여 창건주지 겸 수련원장을 맡아 이곳에서 상주하면서 ‘붓다넷. 넷’과 ‘불교전자도서관’ 웹사이트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그의 공식 직함은 佛法敎育協會社 會長, 호주불교연맹 부회장과 세계불교도우의회 본부 부회장 등을 맡는 등, 불법전파와 교육을 위해서는 理判事判을 가리지 않고 소임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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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김용직(金容稷)
소 속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생년월일 : 1932년 11월 30일(76세)
김용직 박사는 1932년 11월 30일 경북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1968년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75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교 교수로 봉직한 후 1997년 정년 퇴직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용직 박사는 주로 한국 근대시의 역사적 정리와 그 미학적 체계화라는 일관된 목표를 내세우면서 꾸준한 비평활동을 전개하였다. 김 박사는 시대와 이념이라는 역사적 조건에 얽혀 있던 한국 근대시의 다양한 양상을 시의 구조, 이미지와 상징, 시작의 짜임새, 시적 긴장 등 분석주의 방법에서 주로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을 적극 도입하여 깊이 있게 해명함으로써 한국 근대시의 연구에 하나의 정통적인 시학을 확립하였다. 그러므로 기존의 연구에서 주로 시의식과 시대정신을 강조해왔던 김소월(金素月) 한용운(韓龍雲) 이상화(李相和) 윤동주(尹東柱) 이육사(李陸史) 등의 시를 시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여 이들 시의 보편적인 미의식을 밝혀냈으며, 또한 시문학파나 1930년대의 모더니즘운동 전반에 대해 정확한 자리를 매겨주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연구와 평론활동은 한국근대시의 사적 체계화에 기여하였으며, 또한 일관된 방법론으로 한국의 근현대시 전반을 재질서화함으로써 한국시사의 과학적인 체계화를 위한 중요한 전범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