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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 보화(普化) 스님은 요령을 들고 다니며 가르침을 폈다. 입적할 때를 미리 알았던 스님은 스스로 관을 만들었다. 관을 짊어진 보화 스님은 대중들에게 “내일 동문 밖에서 열반하겠다”고 알렸다. 큰스님의 입적 소식에 대중들이 운집했다. 보화 스님은 “오늘 말고 내일 남문에서 가련다”고 말했고, 다음 날은 서문에서, 그 다음 날은 북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하루 미뤄질 때마다 사람들은 “속았다”며 스님의 입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북문에 이르러 아무도 오지 않자 스님은 “이제야 갈 때가 됐다”며 한참 요령을 울리고는 관 속에 들어가 입적했다.
보화 스님은 죽음을 거추장스럽게 남에게 보이려하지 않았고, 남과 함께 하려고도 않았다.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善生福終의 준말)에 전국민적인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30여 만명 이념ㆍ계층ㆍ종교를 초월해 김 추기경을 만났다. 우리 사회에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 온 김 추기경의 행적이 ‘착했던’ 까닭에 추모를 위한 인파가 몰려 그를 ‘복되게’ 한 것이지만, TV와 신문 보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19일 대한불교진흥원이 ‘불교문화의 발전과 불교 미디어의 역할’을 주제로 개최한 불교와 사회 포럼에서도 김수환 추기경 선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역대 대통령까지 찾는 조문행렬에 불교역할을 돌아보게 됐다”는 참가자부터, “추기경 권한을 가진 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고 존경받아야한다. 가톨릭이 가진 권력과 불평등에 대비해 불교 정신을 부각시킬 대안이 시급하다”는 참가자까지. 이들은 무엇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까지 명동성당으로 이끈 미디어의 위력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만 봐도 1993년 성철 스님 열반 당시 스님의 열반 소식과 생애ㆍ업적의 단 두 꼭지뿐이었다. 김 추기경과 관련해서는 안치된 유리관 온도까지 알려주며 매일 주요 뉴스로 대여섯 꼭지 이상 내보냈다. KBS는 물론 조선ㆍ중앙ㆍ동아 등 일간지도 예외는 아니다.
미디어들의 과잉보도를 보며 해당 기관 이사회나 제작진을 의심하고 원망하기는 쉽다. 불교 미디어 관련 인프라 구축과 인재불사 타령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은 ‘몰래 행동하고 은밀히 행함(潛行密用)’을 가풍으로 삼고 미덕으로 여기던 한국불교, 우리 자신에 있지 않을까?
시대가 변했다. ‘인생은 홀로 와서 홀로 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위해 관을 짊어지고 동서남북을 오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던 보화 스님의 가르침이 대중에게 어필하던 시대는 갔다. 매 사건마다 염불 외듯 되뇌는 “인프라와 인재양성이 시급하다”는 타령보다는 우리 자신부터 대중 속으로 빠져드는(入廛垂手) ‘쇼’를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