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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국제금융사태로 금모으기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YWCA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어요. 금십자가를 가져온 추기경에게 ‘신앙의 성물(聖物)인데 내놓으시냐’고 물으니 추기경님 대답이 걸작이었어요. ‘예수님은 몸도 바쳤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더군요.’”
한국 가톨릭계의 지도자이자 사회적 양심이라 불리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즈음해 종교계 지도자로 30여 년 사회운동을 같이 해온 前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74ㆍ영화사 회주)은 남다른 애도를 표했다.
-스님께서는 故 김수환 추기경과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불교계에서는 가장 먼저 조문을 다녀오신 것으로 압니다. 그만큼 추기경의 선종을 맞은 애통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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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저녁뉴스에 김 추기경의 선종 속보가 떴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입원했을 때 몇 번 쾌유를 기원하는 화환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김 추기경의 병환이 걱정돼 작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어요.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대화합을 위해 큰 업적을 세우신 나라의 큰 어른이니 만약 타계하실 경우 국민장에 준하는 사회장으로 모셔달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어요. 부리나케 준비해서 찾아가니 빈소도 채 차려지기 전이더군요. 김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되고 미사집전을 마친 정진석 추기경이 찾아와 조문을 안내했습니다. 1시간 30분쯤 기다렸어요. 김 추기경은 열린 사고를 지닌 개방적인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종교를 초월해 국민화합, 민족화해, 인도적 지원 등 사회 정의와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분입니다.”
-김 추기경과는 언제부터 어떤 일을 주로 함께 하셨는지요? 중요하게 기억되는 부분들을 회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처음 만난 것은 1971년 청담 스님 빈소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그때 청담 스님을 조문 왔었습니다. 젊어서부터 종단 일을 시작했던 나는 그때 홍보역을 맡고 있었지요. 이후 총무원장이 된 후로는 국방부 ‘군종의 밤’ 행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이후 내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의 공동대표, 이사장으로 활동할 때 추기경은 꼭 찾아와 축사했고 함께 했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때도 김수환 추기경과 나는 청와대에 함께 초청 받아 시국현안 등을 살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대통령 통일고문회의에서 활동한 것을 비롯해 국가ㆍ사회적 원로초청모임마다 함께 활동했어요. 사회적 이슈와 갈등 해결과 화합에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목사님 그리고 내가 트리오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종교지도자로서 추기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까?
“2000년 5월 김수환 추기경이 심산(心山)상을 받았습니다. 심산상은 항일독립투쟁가로 초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심산 김창숙 선생을 추모해 제정된 상인데 불교계로 치면 만해상과 같습니다.
수상 후 김 추기경과 서울 수유동 심산 선생 묘소를 찾았는데 주저 없이 절을 하는 겁니다. 개신교쪽에서 성직자가 절했다고 비난이 컸습니다. 그래도 추기경은 담담했어요. 김수환 추기경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물으니 ‘어른에게 절한 것은 당연하다. 민족지도자인데 어떠냐?’고 반문하더군요. 그때 동아일보 사설 중에 ‘돌아가신 지도자에게 살아있는 지도자가 절한 것은 잘한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이 기억납니다.
또 김 추기경은 젊은 시절 석굴암에 감동 받아 1시간 동안 부처님 앞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가톨릭 추기경이었지만 불교와 유교의 피가 흐르던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정신을 화해와 화합으로 표현하셨지요.
종교간 화합을 위해 불교에서는 내가, 개신교는 故 강원룡 목사가, 가톨릭은 김수환 추기경이 함께 활동했습니다. 故 강 목사도 나이가 많았지만, 김 추기경도 나보다 13살이 많았어요. 13살 어린 내게도 김수환 추기경은 항상 ‘총무원장 스님’이라며 깍듯하게 대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겸손하고 부드럽고 조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도 항상 부드러웠지만 단호함이 내포돼 있었고요. 하지만 말보다는 깊은 의미가 담긴 웃음과 낮은 곳을 향한 실천으로 주변을 설득하던 분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한없이 부드러운 친절로 대하면서 불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왔고요. 부당한 것에 대해 강론과 담화 등으로 대항한 실천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요즘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럴 때 추기경의 선종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이 시대에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한 말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작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 뿌리고 가꾸고 추수해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이를 어기고 탐욕으로 금융질서를 악용한 결과가 지금 겪고 있는 경제공황입니다. 특히 미국 뉴욕 월가의 탐욕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중남미와 유럽은 물론 한국 등 아시아까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금융제도가 문제였으니 제도를 바꿔야지요. 상생(相生)을 염두에 두고 제도개혁을 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점은 국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G7(Group of Seven)으로 대표되는 미국 영국 독일 이태리 캐나다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빈곤국과 함께 공생(共生)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제는 종교편향도 중요한 사회현상이 됐습니다.
“종교편향은 피해 입은 불교를 넘어 국민화합을 깼다는 점에서 분명 잘못된 현상입니다. 사회정의와 도덕성 앙양을 역행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원인은 불교에도 있습니다. 포교를 등한시해서 얻은 과보지요. 종교편향이 장ㆍ차관 등 고위직 공무원과 교육현장에서 종교편향이 심한 것 같은데, 이제는 종교편향 금지법 등으로 제동장치가 마련됐으니 일단 지켜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물질의 풍요가 종교에 대한 외면을 불러 오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종교는 왜 필요하고, 한 사회에서 종교가 참다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할까요?
“종교인이 먼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 추기경이 선종했어도 그의 가르침은 남았습니다. 김 추기경을 모델로 삼아 요익중생(饒益衆生) 하는 종교인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김 추기경께서 생전에 민주화와 낮은 곳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지금도 국내외 소외계층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십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재직 때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셨습니다.
“불교는 경전 등을 배워서 알고 수행을 통한 체험으로 이를 확신하는 종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사회적 실천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이 개인적 수행으로만 끝나면 중생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의 공(空)사상에 근거해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일체중생에 자비를 베풀라는 요익중생의 가르침을 실천하자는 것, 불법을 세계에 전해 중생을 일깨우자는 것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입니다.
경실련 운동 등은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공명선거 운동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전개했습니다. 이런 운동들을 통해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가진 사람이 나눠주는 도덕 운동이 생활화된다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한국불교는 자기 수행과 기복에만 치우쳐 있습니다. 비우고 살면 편안해집니다. 법열(法悅)을 맛봤다면 이를 남과 나누는 것이 바로 보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