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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씨 할배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평균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할배의 30년 지기(知己)이자,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배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소의 턱 아래 매단 쇠방울의 순우리말) 소리도 귀신같이 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해도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할배가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할배는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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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43) 불자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세대를 초월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워낭소리’는 2월 3일 개봉 20일 만에 한국독립영화 사상 최대 기록인 10만 관객을 돌파하고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계속되는 입소문으로 영화 상영관이 40개관까지 늘며 관객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입소문을 빌려 상영관을 늘려가는 새 배급 방식이 독립영화의 대안으로 정착 가능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진정성이 어떤 극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영화의 스토리가 노년 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까지 눈물짓게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여든에 가까운 할아버지 농부와 그의 부인이 30년을 키워 온 마흔 살 된 늙은 소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늙음과 이별을 그린다. 주관객층은 농촌 향수를 지닌 30~40대이지만, 남녀노소 전 연령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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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급과 홍보를 맡은 ‘인디스토리’ 관계자는 “젊은이들은 소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 뭉클해 하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런 고생을 하면서 자신들과 부모님을 키웠구나 하는 효심(孝心)도 느끼는 것 같다. 30~40대는 농촌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3년 동안 경북 봉화의 산골 하눌마을에서 절제와 기다림으로 주인공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이충렬 감독은 “전남 영암, 고향마을 절에서 매일 아들을 위해 불공을 올리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본성(本性)을 찾아나선 심우도(尋牛圖) 속 주인공 처럼 욕심 내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작업에 임했다”고 털어났다. 그는 제작비가 부족해 조계종 총무원에 지원을 청했지만 퇴짜를 맞아 카메라 두 대로 지루한 촬영에 임할 수 밖에 없었지만, 대신 ‘기다림’과 ‘느림’의 의미를 배우고 ‘덜어내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고 오히려 감사히 여겼다. 이 감독은 “기회가 닿는다면 바람이나 설해목 처럼 불교의 정적인 정서속에서 일상과 내면을 말없이 그려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워낭소리’는 극장이 제한되다 보니, 영화가 직접 관객을 찾아가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사찰, 신행단체에서 요청할 경우, 어디라도 달려가 상영회를 열 계획이다. 문의: (02)778-0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