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정진으로 응공 되시옵소서”
중앙신도회 불교인재개발원과 함께한 봉암사 대중공양 현장


우뚝솟은 희양산을 배경으로 선수행의 태두 봉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공양을 베푼 것은 복이 매우 많다. 비구들이 너에게 한 덩어리의 밥만을 먹더라도 그 복덕이 한량 없느리라.”(사분율 제13권)
부처님은 공양의 공덕을 묻는 재가신도에게 이렇게 설하셨다. 불가에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은 복전(福田)으로 불리는 큰 공덕 중 하나다. 특히 부처님 당시 3개월 안거기간동안 걸식조차 못하는 수행자들에게 올리며 시작된 대중공양은 ‘해제날 갖은 음식을 베풀면 지옥 아귀중생도 구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공덕이 한량없다.

동안거 동안 스님들은 무엇을 궁구했을까


이처럼 불교만의 아름다운 풍속을 이어 정월 대보름 해제일을 앞둔 1월 30일 재가신도의 대표단체인 중앙신도회 불교인재개발원이 조계종의 대표적 참선도량인 희양산 봉암사(鳳巖寺)를 찾아 대중공양을 봉행했다.

부처님의 성도가 있게 한 ‘수자타의 공양’처럼 대중공양의 깊은 뜻과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평시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특별선원 봉암사도 문을 열었다.

예불 후 다시금 태고선원으로 정진들어가는 스님들 뒷모습이 가지런하다


세속과의 인연이 쉽지 않은 사찰로 수많은 대중들이 일주문 어귀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 길. 불교인재개발원 최재동 이사 등 임원진과 신도 50여 명은 새벽같이 준비해 먼 길을 달렸다. 삼동 기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봉암사 일주문을 지나 겨우내 내린 잔설이 쌓인 희양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웅전에 이르렀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니 조용히 해주시고, 사찰 전경은 담지 말아주십시오.”

카메라로 경내를 담으려는 경솔한 기자의 마음을 원주 스님이 조용히 타이른다.

신도일행이 경내를 둘러본 지 얼마 후 예불을 마친 스님들이 대웅전에서 나와 선방으로 이동한다. 가지런한 뒷모습에서 행선(行禪)의 향기가 희양산 꼭대기까지 퍼지는 듯하다.

이른 아침 눈이 내려 말그대로 백운이 된 백운대


재가자들은 경내를 잠시 둘러보고, 봉암사 계곡을 따라 백운대(白雲臺)에 위치한 마애보살좌상을 참배했다. 흰 구름(白雲)처럼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바위 위에서 정성스럽게 참배하는 모습에는 추위가 범접치 못한다.

안양에서 온 구본진 (51)씨는 “봉암사에 네 번째 대중공양을 왔다. 수좌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 싶어 대중공양이 있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오고 있다”고 말했다.

참배 후 찾은 대웅전에는 종이로 만든 작은 불전함이 임시로 마련돼 있었다. 수행사찰이라 평상시 불전함이 없는 연유다.

대중공양에 참가한 보살님들이 마애보살좌상에 기도하고 있다


부처님 전에는 대중공양 날을 맞아 신도들이 올린 치약, 비누, 소화제, 소금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중앙신도회의 방문에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은 법공양으로 답례했다. 스님은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 ‘배슬여빙 무연화심 아장여절 무구식념’(拜膝如氷 無戀火心 餓腸如切 無求食念 무릎이 에어내도 불 그리워 말고, 주린 창자 끊어져도 음식생각 말듯 수행에 전념하라는 뜻) 구절을 인용하며 “경제난으로 봉암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들이 힘들지만, 스님들은 어려우면 공부를 더 잘하니 걱정마시라”고 말했다.

스님뒤로 보이는 시레기와 나무장작은 누구의 공양일까


스님은 이어 “스님들이 선방에 공양 올리는 것 또한 재가자들이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올 한해 힘들겠지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덕담하고,

항상 모든 일에 복이 가득하라는 ‘동지만복(動止萬福)’이라는 휘호를 선사했다.

법회 후에는 최재동 이사가 보시금을 전달했다. 한 신도는 배웅 나온 한 스님께 예쁜 바랑도 선물했다.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이 법공양을 피고 있다


봉암사를 처음 찾았다는 황원기 박사(50, 과거사정리위 민족독립조사국 조사관)는 “수행결사로 한국불교를 새롭게 한 역사적 현장에 직접 와보니 감회가 새롭고, 현 법전 종정 스님을 비롯한 종정 5명과 총무원장 스님 7명 등 오늘날 큰스님을 배출한 현장에 오니 그 기를 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많은 곡절이 있지만, 묵묵히 수행하는 선승들이 있기에 내실을 기할 수 있었던 불교계. 한국 불교계는 사리와 같은 선승들의 정진과 함께, 수행을 뒷받침하는 보살들의 신심이 함께해 존재할 수 있었다. 재가자들의 실천을 화두로 던지며 희양산의 저녁은 깊어갔다.

노덕현 기자 | Dhavala@buddhapia.com
2009-02-09 오전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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