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수입과 대운하 등 각종 시국현안에 불교계 목소리를 내온 ‘시국법회추진위원회’(공동추진위원장 수경ㆍ명진ㆍ효림ㆍ선묵ㆍ지홍ㆍ정념ㆍ계호ㆍ능혜 스님, 박광서)가 2월 5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한 시국법회’를 봉행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불교환경연대, 불교인권위 등 스님 30여명과 유족 10여명을 포함한 500여 명의 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법회는 1부 시국법회와 2부 시국행진(봉송)으로 나눠져 진행됐다. 대불청과 대불련, 조계종 종무원 원우회,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불교계 단체들도 동참해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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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모법회 현장에는 유가족 10여명이 참석해 부처님 품에서 아픔을 승화시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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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법회 공동추진위원장 수경 스님은 여는 말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는 힘없는 국민을 적군처럼 대하는 공권력의 결과다”며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정부에 묻고싶다”고 규탄했다.
수경 스님은 이어 “불문에 귀의한 수행자로서 큰 자괴감과 비통함을 느낀다. 세상이 이지경인데 누구를 위한 종교인지, 수행의 의미는 무엇인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며 “입만 열면 중생구제와 정토구현을 말하는 불교계를 비롯한 사부대중은 ‘자타불이’(自他不二) 정신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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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국법회추진위는 추모법회와 행진에 이어 청계광장에서 소전의식을 비롯한 위령제를 봉행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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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진관 스님도 추모사로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2009년 1월 새벽은 죽음과 죽임 나라의 새벽이었다”며 “1980년 5ㆍ18 광주민중의 학살자를 처벌하듯, 오늘의 참사를 잊지 말고 역사의 심판대에서 국민의 힘으로 심판하자”고 말했다.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은 시국법회 법어에서 “사람에게 사는 것을 능가할 만한 것은 없거늘, 재개발은 무엇이기에 사람의 죽음위에 세워져야 합니까. 국가의 공권력은 무엇을 위해 사람의 죽음도 불사한 것 입이까. 부처님도 하느님도 어쩌지 못하는 그 죽음을 주고 국민을 섬긴다는 대통령이 맞습니까”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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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관 1명과 시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는 경제발전과 개발일변도의 시대적 비극 제 1막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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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어에 이어 참가자 일동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정부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정부일 수 없다”며 △대국민 사과를 비롯한 정부참회 △관련 책임자 엄중문책 △재발방지 위한 재개발 근본대책 마련 △민심수습위한 구속 철거민 석방 △검찰의 철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정부조치가 없을시 모든 국민들과 종교계, 시민사회와 연대해 범국민적 저항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결의 후 정휴 스님(실천승가회 부대표)의 발원문 낭독과 희생자 故윤용현 씨의 아들 윤종현 씨의 호소의 말, 수경 스님의 집전 하에 천도의식이 봉행됐다. 참가자들은 천도의식 동안 108배로 공업참회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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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은 행렬이 차도측에서 보이지 않게 차벽을 쳐 외부분위기 확산을 막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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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법회 종료 후 참가자들은 조계사를 나서 종각사거리, 광화문을 거쳐 청계광장까지 추모행진을 거행했다. 선두에는 영정과 위패를 든 유가족들이 서고 만장과 백등을 든 스님과 불자들이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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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호를 외치는 등 위협적인 경찰의 분위기에도 추모행진은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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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과도한 경력을 배치해 행렬을 인도로 행진하도록 막고, 차벽을 쳐 차도에서 행진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구호를 외치고 광화문 쪽 진입을 막는 등 경찰의 과열된 분위기에도 추모행렬은 시종일관 평화 속에 행진을 진행했으며,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합류 후 영가천도의 소전의식을 끝으로 회향했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용산철거민참사기독교대책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인권센터 등 기독교 단체들도 종로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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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청량해 삿된 것을 막는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위패들이 불에타 천도되고 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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