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이 동안거 해제를 맞아 법어를 발표했다.

혜초 스님은 마조 스님의 일화를 소개하며 “동안거 기간 동안 내 안에 살아있는 부처를 보지 못하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죽은 부처만을 찾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보라”고 말했다. 또한 “해제는 결제동안 갈고 닦은 지식과 지혜를 중생과 사회를 위해 베푸는 이타기문임을 명심해 어렵고 혼탁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법어 전문.

대주(大珠)가 마조(馬祖)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불법(佛法)을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마조 스님이 대답하기를 “사람마다 보패(寶貝)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려 하는가?”

대주가 다시 묻기를 “무엇을 일러 보패라 합니까?”
“나에게 불법을 묻는 자네 그 마음이 바로 보패일세. 사람은 누구나 일도(一切)일체가 구족(具足)하고 모자람 없어 그 보패를 꺼내 쓰면 될 것이니 다시 밖으로 구하지 말게나.”

수행납자(修行衲子)여!
그대들은 지난 동안거(冬安居) 기간(期間)동안 내 안에 살아있는 부처를 보지 못하고 지식(知識)으로만 알고 있는 관념적(觀念的)인 죽은 부처만을 찾지는 않았는지 마조 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십시오.

오늘은 임제의현 선사(臨濟義玄禪師)의 수행(修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임제 선사는 중국 선종(禪宗)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을 창시(創始)한 분입니다.
해동조사(海東初祖)이신 태고종사(太古宗祖) 보우 국사(普愚 國師)에게 법을 전하신 석실청공(石屋淸珙) 선사가 임제 선사의 문하이니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모두 임제문손인 셈입니다.

임제 선사는 제자를 지도할 때 장황한 설명을 피하고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어느 날 경전을 강론(講論)하는 좌주(座主) 스님이 임제 선사를 찾아갔을 때 임제 선사가 좌주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좌주는 무슨 경을 강론하는가?”
“저는 깊이 공부하지 않아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백법론>을 대강 읽었을 뿐입니다.”
“만약 한 사람은 경전을 통달했고 한 사람은 통달하지 못했다면 같은가 다른가?”
“통달했다면 같겠지만 통달하지 못했다면 다릅니다.”
이때 임제 선사를 시봉하던 악보(樂普) 스님이 뒤에 서 있다가 말했습니다.
“좌주 스님 여기가 어디라고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합니까?”
이때 임제 스님이 악보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악보 스님이 임제 선사를 향하여 대답대신 “악(喔)”하고 소리쳤습니다. 임제 선사가 좌주를 전송하고 돌아와 악보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나에게 소리쳤는가?”
“그렇습니다.”
임제 선사는 대답이 끝나기 전에 악보의 따귀를 한 대 후려쳤습니다. 지나친 분별심(分別心)은 공부에 해가 된다는 교훈을 법(法)으로 보인 것이지요.

조주 스님이 임제 선사를 찾아왔을 때 일입니다.
마침 임제 선사가 발을 씻고 있었는데 조주 스님이 물었습니다.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발을 씻고 있는 중이요.”
이때 조주 스님이 앞으로 바싹 다가가서 귀 기울여 듣는 시늉을 했습니다.
“두 번째 구정물 세례를 퍼부어야겠군.”
이때 조주 스님이 임제 선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돌아서 가버렸습니다. 이 역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수단이지요.

요즘 경제사정으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생의 욕망을 그대로 둔 채 아무리 경제를 소리 높여 외쳐보아도 불을 끄기 위해 입바람을 불면 불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불집만 커지듯이 세상의 혼란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은 불성을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실천없이 부처를 구하는 것은 농부가 알곡은 경시하면서 껍데기만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기 그지없는 헛수고지요.
누누(累累)이 말씀드리거니와 해제(解制)는 결제(結制)동안 갈고닦은 지식과 지혜를 중생과 사회를 위해 베푸는 이타기문(利他期間)임을 명심하여 어렵고 혼탁(混濁)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三界唯一心 萬法皆唯識 삼계유일심 만법개유식
愚癡迷衆生 大覺名爲佛 우치미중생 대각명위불
삼계가 오직 한마음이요 만법이 알음알이에 불과하니
이 도리에 어두우면 중생이고 이를 알아 깨달으면 부처라네.

三界之中紛擾擾 衆生徒勞悤忙忙 삼계지중분요요 중생도노총망망
一念不生心澄然 無憂無爭不生滅 일념불생심징연 무우무쟁불생멸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우며 사람들이 모두 바삐 날뛰고 있네.
한생각 내지 않으면 마음이 고요하여 걱정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생멸 또한 없어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