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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낭만적으로 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외교ㆍ정치력을 겨루는 시대입니다. 영화 ‘적벽대전’처럼 각국이 문화유산을 컨텐츠화 하는 등 고도의 계산속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2008년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늘었다. 하지만 관심이 감정적 접근에 치우쳤을 뿐 문화재에 대한 진지함은 여전히 결여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통해 문화유산 보존의 세계적 흐름을 살피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관련 국내 정책 전문가인 허권 정책본부장(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은 1월 17일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제128회 우리문화사랑방에서 ‘세계문화유산 보존의 국제적 흐름’을 주제로 특강했다.
허 본부장은 “1990년대 이후 아랍과 서방의 대립으로 문화재 파괴가 잇따라, 문화재를 공존ㆍ상생의 시각에서 접근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문화유산 감상의 단계를 넘어 문화외교의 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1972년)에 따라 지정된다. 신청부터 지정까지는 3~5년이 소요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세계문화(및 자연)유산을 비롯해 세계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인간과 생물권(Man and the Biosphere: MAB) 등 크게 네 가지다. 한국에는 석굴암ㆍ불국사와 해인사장경판전을 비롯해 8점(7개 문화유산과 1개 자연유산)이 지정됐다.
문화유산 지정의 조건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로 △진정성 △유산보존관리 능력 △지역사회 참여 △모니터링 수행능력 △비교연구 등을 심사한다. 허권 본부장은 “대개 2~3개 선정기준에 집중한다. 특히 진정성은 (문화재와 다른) 원형이 아닌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 본부장은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했으나 지역민들 반대 등으로 무산됐던 설악산을 예로 들었다. 당시 세계문화유산 등재되면 재산권 침해를 받는다고 오해해 반대했지만 문화재보호지구로 개발이 억제되는 한국과 달리 유럽 등에서는 오히려 개발에 능동적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허권 본부장은 “지난 10여 년간 전세계적인 세계문화유산 등재 붐이 일었다”며 “서유럽 중심의 문화선진국들의 등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중국이 100개 이상의 후보리스트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을 통한 열린 역사 문화교육도 강조됐다. 허 본부장은 “학예사가 일방적으로 역사유산을 교육하는 방식의 단순한 역사적 관점을 넘어 문화유산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허권 본부장은 “박물관, 도서관 등 문화 인프라의 양적 증대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국내 문화정책이었다”며 “이제는 예술가, 학자 등 전문가 중심이 아닌 시민사회 중심의 다문화정책으로 탈바꿈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허 본부장은 “외규장각도서에 대해 프랑스는 줄곧 반환이 아닌 등가 맞교환을 요구해왔다”며 “‘문화재반환에 관한 협약(1970년)’은 영국, 프랑스 등 문화재 점유국 중심의 협약으로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