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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엔 눈이 소복하다. 청설모는 목탁소리 물고 징검다리 건너고, 하얀 사천왕문 지붕위에는 노송의 그림자가 앉아있다. 처마 끝에 매달린 낙숫물은 찰나의 기억 속으로 떨어지고, 먼 길 온 스님은 부처님 만나러 법당으로 간다. 백양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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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의 이름은 하얀(白) 양(羊)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옛날 양 한 마리가 환양 스님의 법문을 듣고 스님의 꿈에 나타나 고백을 한다. 악업(惡業)의 과보(果報)로 양이 되었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환생하여 극락세계로 가게 됐다고. 이튿날 절 아래에 흰 양 한 마리가 죽어 있었고 스님은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쳤다고 한다. 청운당 죽담장 앞에 눈사람 하나가 서있다. 설법을 들을 모양이다. 합장하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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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기둥에 걸린 목탁이 겨울 햇살에 몸을 말리고, 묵언 중인 차우(개)는 스님의 발자국을 밟으며 돌담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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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기운다. 백암산 그림자가 도량으로 내려와 석등에 불을 켜고, 종각에서는 법고가 울린다. 전각마다 독경소리가 문살에 번지고 어제의 내일은 어느새 사라져 간다. 겨울 달빛이 시방(十方)을 감싸고 피안(彼岸)을 그리며 잠든 중생은 꿈을 꾼다. 녹아버린 눈사람이 꿈속에서 고백을 한다. 극락으로 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