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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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千의 바람이 되어' 달려가요
도반의 향기 - 변해림 불자가수


불자가수 변해림씨.


혜성처럼 나타나 찬불가로 사람들의 가슴을 환희와 감동으로 채워주었던 그녀는 우리들로부터 혜성처럼 사라졌다. 세월 속에 잊혀지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제 3집 앨범 <천의 바람이 되어>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참으로 반가웠다.

이십년의 세월이 넘었건만 변해림씨에게는 ‘주부가요열창 최초 3연승’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닌다. 1988년 MBC <주부가요열창>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3연승을 하였는가 하면 그해 12월 <주부가요열창> 제 1회 연말대상을 수상하였다. 노래방도 없었던 시절인지라 그 당시 <주부가요열창>프로그램은 인기 절정이었고, 제 1회 연말대상을 받은 변해림씨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한가를 쳤다.

“86년도 남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24살 청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동생의 죽음이 너무도 가슴 아파 그날부터 남편과 함께 1년 동안 천수경을 지극하게 모시면서 예불과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때 예불을 올리면서 참으로 많이 울었어요.”

변해림씨는 지금 생각하니 그 때 눈물 흘리면서 열심히 기도 한 덕에 부처님께서 ‘찬불공양’의 기회를 주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주부가요열창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도, 또 가수로 데뷔하게 된 것도 모두 부처님의 가피라고 했다. 그녀는 원래 물욕이 별로 없는 지 부상으로 받은 피아노를 군법당에 보시하였다. 또 외국 여행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인데도 부상으로 받은 유럽 여행 티켓을 반납하고 그 만큼의 액수만큼 전국 고아원과 양로원에 보시를 하였다.

1989년 변해림씨는 제 1집 앨범 <애증의 그림자>를 냈고 ‘애증의 그림자’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그녀는 불자 가수로도 활동하였고, 전국의 수많은 사찰을 오가면서 음성공양을 하였다. 변해림씨는 찬불가 음반 제 1집 <육바라밀>과 제 2집 <해탈의 기쁨>을 내면서 찬불가 가수 1호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녀가 부르는 찬불가를 듣고 있으면 신심이 절로 났다. ‘육바라밀’, ‘보현행원품’, ‘해탈의 기쁨’을 듣고 있으면 환희심이 났고, ‘참회의 게송’, ‘염주’를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참회의 눈물을 쏟게 한다. 음색이 풍부하면서도 절제된 그 무엇이 있어 사람을 마냥 들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화려함 뒤에서 그녀는 격심한 병고를 겪었다. 그때마다 기도로서 극복하였다.
“전 찬불가뿐만 아니라 기도의 공덕에 관해서도 제 체험을 바탕으로 포교할 수 있어요. 우리는 기도를 떠나서는 살수 없어요. 전 기도의 가피를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은 기도에 감응하는 숨은 에너지랄까 신기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도 전국의 산천대천을 찾아다니면서 철야기도를 하는 등 참으로 많은 기도를 했다. 정말 기도 보살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움직이면 골이 앞으로 쏟아지는 듯한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철원의 심원사에 기도하러 갔는데 그때 스님께서 건네 준 약을 먹고 거짓말 같이 나아버렸다.

왜 한동안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느냐고 물었다.
“부산 MBC 방송에서 <변해림의 가요 크리닉>, <변해림의 노래가 보이네요> 등 여러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그때 너무 내 몸을 혹사시켜 심장과 신장을 비롯한 몸의 많은 기관들이 망가져 버렸어요. 육신이 무한정의 에너지를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주부가요열창으로 가수라는 이름을 얻어 6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했다. 몸에게 휴식을 주지 않은 죄값을 혹독히 치렀다. 혹독한 정도가 아니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우리의 불성을 담는 그릇인데 이 그릇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병실에서도 작은 불상과 염주를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 덕분인지 그녀는 살아났다. 그녀는 건강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자 또 다시 기도 정진에 들어갔다.

“3년 동안 병고에 시달리면서 피부는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예전의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몸을 추슬러 기도를 하고 부터는 내 안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생기데요. 기도를 하면 의식이 바뀌고, 정신세계가 바뀌고, 세포마저 바뀐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우리 몸은 몇 십억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세포가 날마다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내 몸의 세포들이 건강하고 좋은 세포로 바뀐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내 몸 안에서 모든 세포들이 기쁨의 합창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내 마음과 육신이 바뀌는 것을 느꼈지요.”

일 년 넘게 <금강경>독송과 광명진언을 열심히 하였더니 얼굴빛이 되살아나고 모든 것이 점차 회복되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어머니를 위하여 작곡을 하는 아들이 음반을 내자고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음반이 <천(千)의 바람이 되어>이다. 이 음반은 ‘죽은 이가 산자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추모시’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나의 묘지 앞에서 울지 말아 주세요/ 그곳에 저는 없어요/ 자고 있지 않아요/ 천의 바람이 되어 드넓은 하늘을 날고 있을 거예요// 가을엔 빛이 되어 땅을 비추고 있고/ 겨울엔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고/ 아침에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우고/ 밤엔 별이 되어 당신을 바라볼꺼야.

변해림씨는 병상에서 ‘천의 바람이 되어’라는 시를 접하였다. 내가 죽더라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천의 바람이 되어 가을엔 빛이 되어 땅을 비추어 주고, 겨울엔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어 기쁨을 주고, 아침에는 새가 되어 깨워 줄거라고 다짐했단다.
“저는 윤회를 믿기에 인과법을 믿기에 ‘죽음이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죽음을 너무 슬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옷을 갈아입듯이 이 몸을 벗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 새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슬퍼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 음반을 낸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부르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왔다. 사람들의 요청으로 장례식장에서 <천의 바람이 되어>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타종교인에게도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불구부정’을 들려주었다.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법당에서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교회에서 찬불가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단다. 그녀는 종교를 초월하여 이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달려 갈 것이라 했다. 변해림씨는 자신의 목소리가 ‘천의 바람’이 되어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는 그들을 위로하고 삶에 대한 용기를 주겠다고 다짐하였다.
문윤정(수필가ㆍ본지논설위원) |
2009-01-13 오전 9:50:00
 
한마디
백화만발 변해림씨의 찬불가 1, 2집을 몇 년 동안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는데 혹시 CD음반으로 재발매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정말 꼭 구입하고 싶습니다.
(2009-01-14 오후 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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