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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보살 월운 스님(봉선사 조실)이 역경원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구랍 19일 있었던 이임법회에서 스님은 “평생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게 돼 홀가분하다”고 말했으나, 사부대중 누구라 할 것 없이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후임 역경원장에 임명됐으나 한때 역경원장직을 고사했던 박인성 교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장)가 역경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님의 부당한 해임에 대한 성토는 재가자의 종단 중요 사업 수행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작 중요한 역경사업에 대한 우려보다는 사람에 대한 비판으로 호도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보살의 원력을 꺾은 과보의 후폭풍이 교계를 강타하고 있다. 파문은 구랍 30일 지안 스님(은해사 승가대학원 학장)을 비롯한 월운 스님 전강제자 15인이 성명서를 내면서 가시화됐다.
스님들은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장 임명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하의 성명서에서 “월운 스님의 일방적 해임은 몰상식한 행동”이라며 “동국대 이사회의 파행적 역경원장 임명에 동의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이어 스님들은 “동국대는 이사회를 즉각 소집해 영담 스님(이사장 직무대행)의 독단적 인사행정을 바로잡고, 조계종 총무원(원장 지관)과 종립대학관리위원회(위원장 무애, 이하 종관위) 스님들은 역경원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화답(?)하듯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들로 구성된 종관위도 보인 스님 등의 요청으로 1월 20일 소집 예정됐다.
#월운 스님 왜 해임됐나?
성명서에서 전강 제자스님들은 동국대 이사장 직무대행 영담 스님을 월운 스님 해임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님은 “봉선사 문중의 종회의원 3인이 지관 스님과 가까운 화엄회 소속이 됐다”면서 “동국대 이사 가운데 봉선사 문중인 혜림 스님이 최근 지관 스님 편으로 간 것이 (월운 스님 해임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종단 내 노스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실과 행정절차상의 여부를 떠나 역경원은 동국대 측이 좌지우지할 성격의 기관은 아니다.
월운 스님도 “역경원은 종단과 학교가 역경 사업에 대한 중요성을 공감하고 서로 잘 하기 위해 관계를 유지한 기관”이라며 “원장소임을 마친 것이 종단과 학교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 같아 염려된다”고 말했다.
역경원의 존립 근거가 학교행정의 선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과 일정부분 의논돼야 하는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자체가 조계종립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역경원은 매년 조계종 지원을 받는 등 각별한 ‘존재의 의미’가 있었다.
월운 스님을 비롯한 종단 내 노스님들은 역경원의 위상과 관련해 학교행정과 종단 정치의 역학 구도 속에서 역경원이 본래의 기능과 상관없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는 역경원과 불교문화연구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를 통합해 불교학술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불교학술원 설립안은 오영교 총장이 2007년 총장 취임당시 조계종 종립대학인 동국대를 불교학의 세계적 메카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며 내놓았다.
비전 제시 후 2년이 지난 지금 1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쳤지만 여전히 실체는 없다.
다만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라는 동국대 내부자료에 따르면 한국학·한국불교학 연구 계발 진흥 등을 위해 불교문화연구원, 동국역경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와 종학연구소(미개설)를 하위에 둔 기구라는 설명만 하고 있다.
연구기관 통·폐합 등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 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상위개념의 불교학술원 간판을 두고 학술원장 보직만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동국대 내부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존의 연구기관은 그대로 둔 채 단지 불교학술원만을 두는 것은 효율성 등을 추구하던 오영교 총장의 개혁 성향에 비춰볼 때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역경원에 인연이 깊다는 한 교수는 “불교학술원에 관한 공지가 우선된 후 공청회 등을 통해 종단의 중지를 모은 후 월운 스님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며 “만들어봐야 실익이 없어 휴면상태에 있던 불교학술원을 다시 언급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라 말했다.
결국 동국대가 빠른 시일 내에 불교학술원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바람직하게 운영하지 못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월운 스님 해임에 대한 화살은 영담 스님(이사장 직무대행)에게 머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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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학교 머리 맞대고 묘수내야
교계 일각에서는 월운 스님 해임이 부당했던 것은 사실이나 역경원 이름만 남은 채 부실하게 운영됐던 역경원을 재정비할 기회라고 말한다.
동국대가 역경사업을 제대로 하던지, 조계종이 종단 소속기구화 하던지, 독립법인화 하는 방법 등을 이번 기회에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월운 스님의 전강 제자스님들을 비롯해 조계종 종관위 일부 스님들은 “역경원을 동국대에서 종단이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관위 위원 보인 스님은 “역경사업은 조계종 3대사업임에도 종헌·종법에서 ‘역경’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이번 사태는 종단에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스님은 “재가자를 역경원장에 임명한 것은 조계종 교육원장을 재가자로 임명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역경원을 종단이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님도 “종단이 불안정했던 시기에 역경원을 설립해 종단에서 가장 안정적이었던 동국대에 의탁했었다”며 “지금대로라면 역경원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부속기관에 지나지 않게된다”고 성토했다.
스님은 “역경원을 학술단체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거듭 강조한 뒤 “교육원 포교원처럼 역경원을 총무원에 둬야한다”고 제안했다.
역경원을 독립법인화 하자는 방법도 제시됐다.
한 역경 전문가는 “1984년 설립됐던 동국역경사업진흥회(이사장 지관, 이하 진흥회)의 설립취지를 살려 100억 상당의 재단 재원을 역경원에 귀속시키면 독립법인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경원 1년 예산 9억여 원 가운데 정부지원 4억, 동국대 2억, 조계종 교육원 2000만원을 비롯해 진흥회도 매년 2000만원씩 지원중이다.
예산 중 상당액은 월운 스님 원력으로 이끌어온 역경원 후원회의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는 사실은 출·재가를 떠나 역경사업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상당했음을 반증한다.
역경원 관계자에 따르면 월운 스님 해임 이후 고액 후원자를 중심으로 역경원의 미래를 묻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역경 보살로 칭송받으며 역경사업에 헌신해 온 월운 스님을 비롯해 물심양면 후원의 손길을 이어 온 후원자들의 신심과 원력에 보답하는 길은 역경원의 변화에 달렸다.
“20여 년간 8번 이사했다”는 역경원 관계자의 말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받던 역경원을 두고 종단과 동국대를 아우른 교계의 중지가 모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