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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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 분 ‘소통’ 바람, 제도화해야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사업 ‘다자간 시스템 번역’도입 성공
열반을 일컫는 니르와나(nirvana)를 A는 ‘니르바나’라 하고, B는 ‘니르와나’, C는 ‘닐바나’, D는 ‘열반’이라 말하면 어떻게 될까? 또 ‘색(色)’을 ‘물질’ ‘현상’으로 표기하거나 ‘공(空)’을 ‘없음’ ‘텅빔’이라한 표현이 공존한다.

한 단어를 두고 여러 가지로 표기하는 까닭에 연구자는 물론 불자들 모두가 혼동을 겪어왔다. 용어의 혼용은 번역자의 개성과 의미전달의 효율을 넘어 대규모 번역출판 사업 등에서는 간과할 수 없
는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조계종 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위원장 지관, 이하 간행위)가 2009년 5월 회향을 앞둔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이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자간 소통을 기반으로 한 다자간 시스템 번역 성공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다자간 시스템 번역은 3~4명의 전문인력이 할당량을 배분해 번역하는 방식이다. 개별 번역에 비해 오류를 줄이고 정확한 원문해석을 할 수 있지만 번역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문인력과 재정만 확보된다면 시스템 번역이 가장 확실한 역경체계”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에서 범어로 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도 다자간 시스템 번역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문경전의 구역과 신역을 구분하는 신기원을 이룬 현장 스님을 비롯해 중국에서는 인도·중국 스님들이 초벌 번역한 것을 2차례 교정본 뒤 윤문과정을 거쳐 최종 번역했다.

다자간 시스템 번역의 극치는 중국 송대의 역경원. 당시 역경원은 △역주(譯註 범어 원문을 읽는 사람) △증의(證義 역주와 원문을 검토) △증문(證文 역주가 읽는 원문의 착오를 검토) △서자(書字 범어 음을 한자의 음으로 바꿔 적음) △필수(筆受 원어를 중국어로 고침) △철문(綴文 글자를 맞춰 문장을 만듬) △참역(參譯 두 언어의 글자를 대조해 오류가 없도록 함) △간정(刊正 첨가·삭제해 문장을 정함) △윤문(潤文 문장을 마지막으로 다듬음)의 8단계를 거쳐 불전을 번역했다.

간행위는 한국불교전서 발간을 통해 전통불교사상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고조시키고자 2007년 2월 조계종 총무원장 직속기구로 발족됐다.

2009년까지 3개년 동안 국고 등 30억 예산을 투입하는 간행위 사업은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 사업에 이은 대규모 번역출판 프로젝트라는 규모뿐 아니라 다자간 시스템 번역의 도입으로 시행초기부터 교계의 관심을 모았다.

2010년 완간을 목표로 간행위가 발간할 도서는 한글 및 영역본 각 13권씩 총 26권. 신라시대부터 조선조까지 원효, 지눌, 혜심 등 한국 대표 고승들에 의해 저술된 한국불교 전통사상서 가운데 69종을 선별해 13책으로 묶었다.

5개 한글과 영어 번역팀과 영역교열팀, 영역윤문팀마다 한글역자 6인, 한글역 보조연구원 16인, 영역자 11인, 영역 2차교열자 및 3차윤문자 등 40여 명의 번역·교열·윤문진이 팀별 워크샵 및 전체 워크샵을 통해 번역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간행위 제1팀만 해도 해주 스님(동국대)을 팀장으로 대학원생들이 수십번 윤문과 주해과정을 거쳤다. 한글화된 것을 로버트 버스웰 교수(美 UCLA) 등 영어권 학자들이 영역했고, 한글화 작업자와 영역 작업자가 만나 소통하며 오류를 줄였다.

다자간 시스템 번역은 동국역경원 출범 전부터 도입됐었다. 동국역경원 출범이전인 1963년 1월, 조계종 종정 직속기관으로 구성됐던 역경위원회는 번역·증의·윤문 등 6개 분과를 갖췄었다.

박종린 위원(동국역경원)은 “초기에는 번역과 증의, 윤문분과 위원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였으나, 인력 및 시간 부족, 경비절감 차원에서 지속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계 전문가들은 “간행위의 형편이 역경원과 달랐다”고 말하지만 간행위 역시 국고와 종단의 지원은 있었어도 번역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교열을 담당한 미산 스님(중앙승가대)은 “한국전통사상서 번역에 사용된 시스템 번역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며 “종단에서 추진했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중국 역경원이 왕실의 후원 속에 고비용의 역경시스템을 유지했듯 정부와 총무원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불사였다는 말로 해석된다.

간행위는 1월 17~1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5차 국내·국제 워크샵을 개최한다. 그동안 간행위는 네 차례 국제 공동 워크샵을 개최해 번역자간 소통을 도모했다.

사업시행 초기부터 열린 워크샵을 통해 번역원칙, 스타일, 편집방침이 정해졌다. 이번 제5차 워크샵에서는 마무리 단계에 있는 한글 번역 성과물을 공유하고, 번역 및 교열과정에서의 성과와 문제해결 방법 등을 공유하게 된다.

간행위 김재성 선임연구원은 “이번 워크샵을 통해 개별팀의 한글 및 영어 번역작업 성과를 다른 팀과 공유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3년여에 걸친 간행위의 번역 인프라가 제도화·상설화되어 종단 3대 사업인 역경사업의 새 전기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1-09 오후 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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