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물이 마중물(실마리)이다.’
초하루, 보름 법회 날만 사찰을 찾는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도량의 마중물 공덕이 있다. 절일을 삶의 일부로 보살피며 보사(保寺)로 사는 보살들. 서울 봉원사, 봉은사, 부산 홍법원, 김제 금산사에서 법향을 전하는 그들의 보살행을 통해 신바람 나는 기축년, 감로의 희망 머금은 한 해를 살아보자. 활력 넘치는 대통물의 해답을 도량의 마중물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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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삶의 스승이자 죽비와 같아”
서울 봉원사 공양주 김복순 보살
“눈 뜨고 감을 적마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나오는 대로 찾아~”
새벽 4시 여명이 감도는 시각, 도량석 목탁 소리가 도심 사찰을 다독인다. 서울 봉원사(주지 일운) 삼천불전 아래 자리한 공양간에는 동지 팥죽에 들어갈 옹심이가 채반에 가득하다. 그곳에서 만난 김복순 보살(78,보문행)의 분주한 손길도 여념이 없다. 무자년 삼동산림결제(三冬山林結制) 기간에 동지와 관음예문(중산림)까지 겹친 탓에 정신없을 법한데도 노보살의 정갈한 분주함은 절도마저 감돈다.
“공양주로 인연 맺은 지 20년도 넘었지. 봉원사 관음회서 삼천불전 기와불사 접수 받는 일을 할 때였어. 공양주 보살이 다리를 다쳐 당분간 봐준다는 것이 이렇게 세월이 흘렀네.”
오가피, 울릉도산 부지깽이, 더덕무침 등 10가지 반찬이 영단에 올릴 것과 200여 명 대중 공양물로 구분돼 그릇에 척척 담겼다. 매일 새벽 일어나는 일이 고단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눈이 저절로 떠져. 부처님 가피뿐이 없다고 봐. 하루도 변함없이 새벽 3시면 일어나 솥에 물을 끓이니까”라고 답했다.
달리 비결이랄 것 없는 참기름 간에 퉁그러진 손맛으로 설설 버무려진 나물을 보고 있자니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민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올라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신도들이 맛있게 먹고 건강한 모습으로 도량을 다시 찾을 때 가장 뿌듯하지. 움직일 여력이 있을 때까지 하루 세 번 밥 짖는 일만은 최선을 다할 거야.”
김해 진영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결혼해 맹장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는 그가 봉원사 대중이 된지도 30년이 됐다고 헤아린다. 시계가 정각 5시로 향하자 밥 짓을 때라며 찜통에 불린 쌀을 넣고 밥물을 맞춘다. 문을 닫기 전 두 손을 모아 경건한 합장 반배를 올린다. 밥은 그에게 수승한 스승이자 스스로를 일깨우는 죽비와 같았다. 부처님 전에 마지공양을 올리겠다는 김 보살의 서원이 올 한해도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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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결 같이 도량을 쓸고 닦은 관세음보살”
부산 홍법사 이복개 보살
“남들 안하는 궂은 일만 하는 보살이에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더라구요” “근데 그 보살님은 보수 안 받아요?” “아이고, 10년째 오직 신심만으로 청소하는 분입니다”
부산 홍법사(주지 심산) 이복개 보살(61ㆍ불성화)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가장 지저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들의 청소를 10년째 하고 있다. 자판기 안 눌어붙은 커피 찌꺼기, 화장실 변기, 공양간 개수대 수채 구멍, 채소밭 거름주기, 스님처소 장작 패기 등… 홍법사의 모든 허드렛일은 이 보살의 손을 거쳐 간다.
그는 “맨 처음 수계를 받을 때 스님께 염주를 받으면서 마음속으로 ‘참다운 불자가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했고, 부처님께 너무 감사해서 도량 청소라도 잘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청소를 시작하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그중 가장 신경 써서 닦는 곳은 개수대 거름망이라고. “그물망에 누렇게 낀 때를 보면 꼭 내 삶의 ‘업(業)’처럼 여겨져서 늘 삶는다”고 말했다. 세심하고 부지런한 성품답게 이 보살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 30분부터 출근하는 아들과 등교하는 손자, 새벽일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의 아침상을 준비하고, 약수터에 가 물을 떠오면 바쁜 오전 일과가 끝난다.
점심식사를 챙겨먹을 겨를도 없이 절에 도착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후 6시까지 청소를 한다. 매일 6시간을 꼬박 절에서 보내지만 정작 법회에 들어가거나 기도하는 시간 없이, 법당 밖 청소를 하며 조용히 관세음보살을 정근한다. 이 보살은 “우리 절은 행자스님이나 비구니스님이 안계시니 허드렛일을 할 사람이 없고, 큰 보시를 할 형편이 안 되니까 내 공부를 조금 덜하더라도 더러운 곳을 닦는 것 뿐”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더 많은 이들의 성불을 위해 언제나 법당 밖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내고, 함께 일하는 도반들을 위해 등에 옷을 넣고 ‘곱새춤(곱추)’을 추며 각설이타령을 신명나게 부를 줄 아는 이 보살이야말로 홍법사 도량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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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 많이 와 바쁠 때 더 기뻐”
영어로 전각소개 하는 봉은사 안영란 보살
서울 봉은사(주지 명진) 외벽에 그려진 심우도ㆍ팔상도를 보던 한 외국인이 “나는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를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봉은사 템플스테이부 안영란 부장(55ㆍ고불심)이 “서양에서는 인간이 가장 높은 동물이지만 불교에서는 인간ㆍ동ㆍ식물 모든 일체가 평등하고 공존 한다”고 설명할 때다.
2008년 한 해에만 1만2000여 외국인이 방문할 정도로 봉은사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비단 근처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위치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외국인들이 사찰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언어로 전각 이곳저곳을 설명하고, 바루공양 등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원봉사 도우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안영란 부장이 있다.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복신앙으로 불교를 믿었다. 하지만 1996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봉은사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듣다보니 그것이 참 불교가 아님을 알았다.”
안 부장은 1997년부터 봉은사 교무부, 기획부 등에서 봉사를 해오다 2006년 초부터 템플스테이부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영문학 전공, 영어 교사 등의 경험을 최대한 살린 봉사 무대를 찾은 것. 그는 매주 월ㆍ목요일 담당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장으로서 요일별 봉사자가 사정이 있으면 다른 요일에도 봉사 한다.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 할 때에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모든 준비과정과 일정을 함께하기도 한다.
안 부장은 바쁜 일정 중에도 봉은사에서 진행하는 <법화경> <금강경> 등의 법문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선수행 등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본인부터 많은 공부가 돼있어야 외국인들이 불교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연달아 사찰을 방문해 정신없이 바쁠 때 더욱 기쁘다”는 안 부장. ‘봉사의 프로’로서 외국인들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한 안 부장의 노력이 새해에도 계속 빛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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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향기를 뿜는 사람”
김제 금산사 템플스테이 담당 류영미 보살
“언제나 금산사 템플스테이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이고 싶습니다.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작은 깨침을 얻어가는 것이 곧 나 자신의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템플스테이 업무가 힘들고 어렵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수행의 방편이자 포교라고 여겨집니다.”
전국에서 년 간 약 5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체험하는 금산사 템플스테이 현장에 가면 한 결 같은 환한 미소와 온화한 말씨로 참가자들을 맞이하는 이가 있다. 바로 금산사 템플스테이를 담당하고 있는 류영미(38, 일체향) 보살이다.
낯선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과 타 종교인들이 참가하는 산사체험 현장에서 어색함을 푸근함으로 바꾸는 사람. 그러한 류 보살의 후덕함에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진다.
“사찰 종무소라는 곳이 불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첫 인상인 만큼 친절과 봉사 정신없이는 일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분위기가 썰렁하기 십상인데도 금산사 산사체험은 항상 밝은 웃음소리로 넘쳐요.”
산사체험 참가자들이 금산사에 머무는 동안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항시 웃는 낯으로 많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금산사 템플스테이 팀장 일감 스님을 보좌하며 피곤함도 잊은 채 기획, 홍보에서부터 잡다한 뒷정리까지 곳곳에서 그의 손길은 빛을 발한다.
금산사 산사체험의 주제는 ‘깨어있는 휴식’이다. 복잡한 현대 생활에 지쳐 정신적 갈증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심적 편안함으로 스트레스를 해갈해주고자 힘쓴다. 그러한 그가 있기에 참가자들은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일감 스님은 “피곤을 뒤로한 채 묵묵히 참가자들을 돌보며 참가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곧 자신의 기쁨으로 알고 생활하는 일체향 보살의 모습이 진정 보살이 아니겠는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