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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종교를 무시하는자기종교 중심의 배타적 삶을 참회하며 절을 올립니다.”
“내 가족 만을 위하며 이웃을 배척하는 이기적 삶을 참회하며 절을 올립니다.”
“나 중심의 편협한 삶을 버리고, 남과 함께하는자족의 삶을 다짐하며 절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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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12월 13일, 서울 보신각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뜨겁다. 차가운 돌판에 깔린 얇디얇은 판지 위에서 참회의 절을 일 배 또 일 배 올리는 모습에는 성속(聖俗)의 구분도, 노소(老少)의 구분도 없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단장 도법)은 1217일 동안 3만리를 걸으며 8만 선지식을 만난 긴 여정의 마지막 순례로 13일 종로 일원에서 회향마당을 개최했다. 순례단은 낮에는 탁발순례를 했고 밤에는 지역현장 사람들과 만났다. 좌ㆍ우 이념 대립의 희생자와 기지촌 여성 등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는 위령제와 천도재도 100차례 이상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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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고 외치며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첫발을 내딛은 대장정. 그 끝자락에서 선재동자의 보현행원으로 순례단 대중들이 서원삼아내리는 실천명제는 경건하기 그지없다.
이날 순례는 1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서울역을 출발해 숭례문, 서울광장, 청계천을 지나 신각에서 ‘생명평화 100대서원 절명상’으로 끝마쳤다. 보도블럭으로 덮힌 길과 철근으로 둘러싸인 시청, 인재(人災)로 소실된 남대문이 생명평화의 노란 조끼와 묘한 대비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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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묻혀 사는 겨울 도시인들에게 노란조끼의 생명평화메시지는 봄소식 마냥 따스하다.
9살 아이를 데리고 마지막 순례에 참가한 김연희 씨(41)는 “큰애가 6학년인데 도시에서는 조기교육 등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어렸을 때는 경쟁보다, 자연과 더불어 꿈을 키우는게 중요해 마지막 순례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녀교육을 위해 내년 실상사 작은 학교가 있는 산내면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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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복지현장 실무자도 순례에 동참했다. 대전 대동 복지관 권순룡 관장은 “지금 우리 사회는 무분별한 물질추구와 생명경시로 위험에 처해있다. 5년간의 탁발순례는 이러한 사회에 생명과 나눔의 삶을 주장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관장은 순례 회향 후에도 새로운 길 걷기를 바라면서 그 정신을 이어 순례의 길을 걸을 계획이다. 탁발순례에는 스님, 목사, 수녀를 비롯한 종교인들도 참가해 종교간 화합과 평화 의지를 표현했다. 성심회 이미경 수녀는 “순례단을 만난 것은 지난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사회현안에 나서지는 않았던 내 자신이 순례하면서 바뀌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너 자신을 바꿔라’, ‘말보다는 침묵과 실천으로 보여라’는 순례단의 정신은 내게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미경 수녀는 이어 “2000년 전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큰 깨달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나부터 작은 것부터 바꾸게 된 것이 5년간 얻은 가장 큰축복”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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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에서 마지막 순례를 마친 순례단은 종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닫는 마당을 개최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 도법 스님은 인사말에서 “발길이 닫는 곳마다 생명평화의 기운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국을 순례했다”며 “순례단이 순례를 할 수 있도록 해준 우주 삼라만상과 밥, 잠자리, 마음을 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앞으로 생명평화가 삶의 문화가 될 수 있도록 각자가 현장에서 정진해 가자”고 당부했다.
“생명평화의 길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념이요. 깨어있는 선택이며, 지금 여기서의 행동하는 삶입니다. 나로 인해 모든 생명과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서원합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낭독한 생명평화서약문은 일상 속 실천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순례를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