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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이요”하는 외침 후 목수는 도끼를 휘둘렀다. 나무를 베기 전 고함만 친 것은 아니었다. 돼지머리를 올린 상에 문화재청과 삼척시 공무원, 목수들이 절을 올리며 산신제를 지냈다. 전주 이씨 문중 사람들은 준경묘 제각에서 고유제(告由祭)를 올리며 나무를 베겠다는 축문을 읽었다.
이보다 앞선 12월 8일 조계종립대학 동국대(총장 오영교)에서는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회의에서 월운 스님은 역경원장에서 해임됐다. 사전협의나 통보 없이 동국대가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학교 측은 “(가칭)불교학술원 설립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하지만, 졸지에 평생 일군 불사에서 물러나는 변을 당한 어르신 만큼이나 지켜보는 역경 관계자들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처사였다.
스승 운허 스님의 뒤를 이어 월운 스님이 역경원장을 맡은 지 15년, 돌도 자리 잡아 쉽사리 옮길 수 없는 세월이다. 110살 금강송도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켰기에 산신제 등을 지내며 예를 갖추고, 끝으로 ‘어명’이라며 나무의 혼을 달랜다.
흔히 인재불사와 교육은 나무에 비유된다. 인재 하나를 키우는 것이 나무 한 그루 자라는 시간만큼 긴 세월을 필요로 하기에 비교되는 것이리라. 굳이 동체대비(同體大悲)까지 설명하지 않더라도 세수 팔순을 맞은 월운 스님과 110살 금강송이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역경불사는 도제양성, 포교와 함께 조계종단 3대사업이다. 스님은 20세기 한국불교 최고의 불사라는 한글대장경 완간 사업을 이끈 ‘역경보살’이다.
그런 역경원 터줏대감을 동국대는 사전에 아무 절차 없이 단 한번 회의만으로 내쳤다. 무엇보다 대강백의 안목을 잃는 것이 큰일이다. 월운 스님의 원력에 감동해 줄이었던 후원이 끊겨 역경사업이 위축되고, 조계종단의 관심에서 더 멀어질 것도 자명하다.
우스개 중에는 고희(古稀, 70)는 ‘아직 이른 나이’요, 희수(喜壽, 77)는 ‘지금부터 노락(老樂)을 즐기는 나이’, 산수(傘壽, 80)는 ‘아직 쓸모 있는 나이’라는 말이 있다.
정각원장 종호 스님이 “이임법회가 열리는 것을 당일 아침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월운 스님에 대한 예우도 문제지만, 종단적 대사를 개혁의 명분하에 재가교수들에게만 맡기고 말 일인지 종립 동국대의 반성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