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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에 눈이 온다. 마당엔 발걸음 하나 없고, 보탑(寶塔)에 매달린 풍경(風磬)들만 눈보라 속을 헤매고 있다. 쌓인 눈이 길을 감추고, 겨울바람은 길을 찾아 허공을 떠돈다. 저 멀리 향운각(香雲閣)이 눈 속에 홀로 서있고, 조인선원(祖印禪院) 죽문(竹門) 앞에는 스님이 비를 들고 서 있다.
향운각으로 오른다. 백색의 숲엔 겨울이 깊어가고, 홀로 걷는 발걸음은 고요하기만 하다. 관세음보살상 앞에는 스님이 서있다. 거세던 눈발이 잦아들고, 바람에 실려 온 마른 잎들이 마당에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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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로 눈 덮인 수덕사가 보인다. 수덕사에 머물다간 굵은 이름들과 그들이 남긴 결정적 순간들이 오늘도 산문(山門)을 지키고 있다. 산을 내려간다. 다시 만난 나뭇가지가 손을 내밀고, 문득문득 들려오는 산새소리는 고요를 물고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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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아들었던 눈발이 다시 거세진다. 700년 산 대웅전은 눈보라 속에 서있고, 관세음보살과 긴 얘기를 나누던 스님이 법당 앞을 지나간다. 내리는 눈이 스님의 발자국을 지우고, 감춰진 발자국 위로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글ㆍ사진=박재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