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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부터 커피값을 아껴 후원금 5000원을 더 내겠습니다. 요즘 같을 때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부처님 말씀을 따라 보시하면서 살아야죠.”
자녀들의 이름으로 10년째 남몰래 기부해오던 권미혜(47)씨는 올해 또 한 구좌를 늘리기로 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경제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남몰래 자비보시행을 펼치는 불자들의 소액기부는 오히려 늘어나 훈훈한 미소를 더한다.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는 올 연말연시 나눔캠페인 동안 기업 후원금인 ‘큰손’은 줄었지만 개인의 소액 기부금인 ‘작은손’이 늘어 301억 9600만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불교계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기부문화 확산에 나서 ‘작은손’에 ‘큰손’까지 잇따르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기부활동이 저조할 것이라 예상하던 불교계 복지단체들은 기부증가에 IMF관리체제 당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이타심을 떠올리며 반기고 있다.
조계종만 해도 개인기부금과 기업기부금이 모두 크게 늘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02-723-5101)은 개인기부금이 약 10%, 기업후원금이 약 87% 증가했다고 밝혔다. 범불교도대회 등으로 대내외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도 있지만, 난치병어린이돕기 3000배 정근(1배 100원) 등 기획사업과 CMS 등 소액기부 홍보, 기업연계 강화가 있어 가능했다는게 관계자들 중론이다. 강규식 후원담당 주임은 “2009년에는 현재 진행중인 청소년 의지나눔Sharewill캠프 등을 통해 기업후원을 더욱 홍보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천태종도 기업기부금이 크게 증가했다. 기부액 증가율은 2007년보다 약 60%의 증가했다. 천태종복지재단(02-873-3405)이 2008년 4월 기업은행과 제휴해 신도증을 겸한 ‘천태자비카드’로 개인 및 기업기부를 유도한 영향이 컸다. 천태종 윤금선 후원홍보팀장은 “카드사용 적립액이 천태종 복지사업으로 활용되고, 기업은행도 사업영역을 넓혀 상부상조다. 올해 기업은행 측은 달력 등 홍보제작비 및 물품지원에 3억원을 넘게 후원했다”고 밝혔다.
진각종은 개인기부가 줄이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진각복지재단(02-942-0144)의 복지사업후원결사조직 ‘만월회’가 큰 역할을 했다. 만월회는 재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1인당 1만원 모연운동을 펼치는 후원단체다. 먼저 가입한 회원이 다음 사람을 추천하는 릴레이 방식의 새로운 후원 문화를 개척했다. 진각복지재단 조경희 복지사는 “경제가 어려워져도 큰 변화가 없이 매달 1300여 만원이 모금되는 등 꾸준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계 기부문화 정착에는 올해 9월 30일 창립식을 갖고 출범한 불교계 최초 공익법인 ‘아름다운 동행’(02-737-9595)도 큰 힘을 보탰다. 창립 당시 각 사찰에서 5억여 원을 기부하는 등 현재 8억 1960만원의 기부금이 답도했다. 아름다운 동행 원석준 팀장은 “‘아름다운 동행’은 불교TV 공익광고 등 홍보활동을 통해 사찰 스님을 비롯한 재가불자의 기부참가를 유도하고 이를 일선복지현장에 배분할 예정이다. 불교의 보시를 기부문화로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기부 증가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IMF관리체제 당시 후원금이 대폭 증가했지만, 그 이후 다시 줄어든 경험이 있다. 늘어난 후원금을 빈부격차와 소외계층 복지 등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해 지속적인 기부문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제혜택을 중시하는 기부 변화에 따라 정부로부터 보다 큰 세제혜택을 얻어내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국회 상정중인 복수의 공동모금단체를 두게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타종교나 NGO로 출발한 월드비전, 아름다운세상 등 단체는 40년 넘는 긴 역사를 바탕으로 연간 수백억단위 기부금을 모금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박찬정 복지사업부장은 “기부와 복지 활성화에는 인프라, 프로그램, 후원이 함께 가야 한다”며 “불교계 기부시스템은 타종교에 비하면 역사가 짧다. 각 종단 사회복지재단을 비롯해 JTS, 로터스월드, 생명나눔실천본부 등 많은 불교계 단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불법에서는 자비보시(慈悲普施)를 으뜸으로, 보시바라밀행은 육바라밀행 중 첫 번째로 꼽는다. 힘든 경제난 속에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다하는 기부는 부처님을 위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정신 온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불자들의 따듯한 자비심이 살아있는 한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