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 화선지 위로 먹의 여백이 스민다.
바람을 닮은 화가 김양수는 ‘풀숲이 나를 응시한다. 내가 풀숲을 응시한다. 우리 서로 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다가섰다. 11월 19~25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15번째 개인전을 연 김 화백은 ‘숲’을 소재로 7여 년 동안 담백한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 속 단상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김 화백은 고흐처럼 해바라기를 그릴 수 없다. 태양이 아닌 달의 천성을 지닌 이유다. 달밤에 세상을 관조하는 평안한 휴식이 그의 그림에 담겨있다”며 그의 그림세계를 칭송했다. 영화배우 강수연은 “그의 글과 그림이 뭔가 그립고 외롭다는 단어를 연상하게 만든다”며 “그의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영화의 상상력을 제공 받는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극단적인 생각, 팽배한 도전이 펼쳐지는 경쟁의 현실 속에서 고요한 달의 정서를 너그러이 선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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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만난 김양수 화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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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의 그림은 인공조명이 아닌 촛불을 배경으로 깊어지는 생각을 음미하며 즐기기에 좋은 배경이 된다. 달빛 아래서 바라본 운치 있는 세상이 더욱 평온한 것처럼 그의 그림 속 관조하는 일상 풍경들은 문득문득 심상이 됐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잠자리, 고양이, 물고기들이 작가 자신과 지극히 닮았다고 여겨졌다.
작품 ‘바람도 다녀가는 이 고요’를 바라보노라면 그가 그림에 담고자 했던 고요한 바람이 자화상으로 비춰진다. 늘 가까이서 숲을 바라보며 언 땅을 뚫고 나온 새싹, 정열적인 여름, 모든 것을 내려놓은 가을 속에서 경외감과 넉넉함을 발견한다고 말하는 김양수 화백. 시기 질투 없이 생을 마감하는 그 모습에서 여느 인간과 차별된 그 무엇을 느낀다고 전한다. ‘숲’은 그에게 ‘깨어있음’인 것이다. 마음이 들떠있는 세상에서 그의 그림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잔잔한 물결처럼 초연하다. 그의 말마따나 내면의 세계로 천착해 들어가 곰삭혀 묶은 맛을 미술로 구현하고자 하는 생명력이 그로 하여금 붓끝에서 자유롭게 하는 듯했다.
일휴 김양수 화백은 경기도 안성 동막골 적염산방(寂拈山房)에서 생의 고요를 서정적인 그림에 담아 <내 속뜰에도 상사화가 피고 진다>는 이름의 책도 펴냈다. 그의 시 가운데 외로움을 보면 ‘가는 사람 오는 사람도 없다. 내가 저 길을 따라 나서지 못함은 저 길을 따라 걸어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음이다. 가지 위에 참새 한 마리 머물다 간다’며 자연과 가장 닮은 모습과 마음으로 스스로를 겸허히 돌이킨다. 53점의 그림과 함께 실린 105편의 글은 문득 바라본 가을 하늘, 가슴 시리도록 푸른 마음을 선사한다. 바움 펴냄|1만5000원 (031)674-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