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 이만희 선생의 말마따나 떵떵거리며 살았든 죽을 쑤며 살았든 삶은 똑같은 것일 수밖에 없어. 살아가노라면 별 다른 도리가 없는 경우가 있지. 공수레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고 하잖아. 삶의 단면, 그 안의 진솔함을 공감할 수 있다면… 연출가의 소망일 테지.”
한국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로 인정받는 연출가 강영걸ㆍ극작가 이만희가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로 재회한다. 보이지 않는 보물에 대한 미련한 기다림은 욕망이 있는 한 결코 버릴 수 없는 삶의 이유가 되어 또 하나의 ‘고도’를 그려낸다.
서울 극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1월 14~28일 무대 위에 올려지는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1993년 초연 이후 국립극장 50년사를 대표해 찾아온 여섯 번째 무대로 2008년 우수레퍼토리 선정 작이다. 희곡ㆍ연출ㆍ배우의 연륜이 내뿜는 노련미가 빚어낼 한 편의 연극이, 무루 익은 가을 진정한 삶의 음미를 선물한다.
| ||||
“백일홍이 피었다 진다한들 어찌 세월을 탓할 쏘며 이 몸 죽어 무소귀(無所歸)면 산천 또한 더불어 황천행 아니던가. 인간이 신선의 경지에 달하면 어찌 재물이 재물일쏜가, 어찌 권력이 권력일쏜가, 죄는 욕망을 쫓음이요, 욕망은 무지를 쫓음이니 욕망의 개
꿈 속에 머물다간 세월들이 못내 아쉽도다.”
나이 칠십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욕망에 부푼 세 명의 노인. 도박, 사기, 절도, 밀수 등으로 점철된 일상을 살아가던 왕오(이문수), 천축(김재건), 국전(오영수)은 생의 화려한 마지막 베팅을 절터 돈황사 도굴에 건다. 프로젝트명은 ‘신왕오천축국전(新往五天竺國傳). 돈황산 아래 굴을 파 오로지 보물을 발견하겠다는 일념뿐이다. 하루하루 한 움큼 흙을 파들어 가며 현재의 나이테를 그려가던 이들은 인생 막장 참 삶의 의미를 관조한다.
| ||||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자가당착적인 삶의 모순을 거짓 없이 고백한다. 온 우주의 아픔을 혼자 이고 있는 양 난리법석 치는 건방진 인간의 군상임과 동시에 가파른 인생 골목길 세 노인이 펼치는 마지막 발버둥은 절실한 희망이다. 피고 지는 삶은 마치 인생의 피고 짐을 욕망의 피고 짐을 의미하는 듯하다. 인생 막장에 피어난 일확천금의 환상이 만들어낸 꽃 몽우리는 한 겨울에 피어난 개나리처럼 엉뚱하지만 그 향기는 천진난만하다.
2001년 공연 이후 7년 만에 관객과의 만남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실제 배우 나이가 극중 인물들과 연배가 됐다는 것. 넘치는 에너지와 거칠음은 정리되고 마치 낡은 수채화를 감상하듯 애잔함을 나누자는 것이 연출 의도다. 무대 위에서 피고 지는 욕망의 희로애락 속에서 관객은 제각기 색다른 재미와 슬픔을 공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 ||||
연출가 강영걸ㆍ극작가 이만희는 한국 연극의 명콤비다. 이만희 12개 작품 가운데 5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연출자는 “연극을 통해 휴머니즘을 구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배려’다. 왕오, 천축, 국전이 쉼 없이 충돌하는 것도 배려하는 이유다. 욕망의 개꿈을 정리하고자 한 이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열정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티켓 2-5만원, (02)2280-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