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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소
김징자 칼럼니스트
소가 가장 즐겨먹는 풀은 토끼풀, 즉 클로버라 한다. 크고 두툼한 입술에 샌드페이퍼 같은 널찍한 혀를 그토록 조그마하고 연한 풀잎에 대고 한 움큼씩 물어뜯어 우물거리며 천천히 씹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소에 대한 인식이 보다 더 부드러워 진다.

미국의 저술가 마이클 폴란이 쓴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보면 소가 들판에서 선호하는 풀의 우선순위 첫째가 토끼풀이고, 토끼풀을 다 먹은 다음 벼과에 속하는 김의 털, 오리 새, 큰 조 아재비 등을 향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시골에서 소를 놓여 먹이는 몇몇 농부들 이야기를 들으면 소는 토끼풀을 먹지 않는다.

어쩌면 우공(牛公)들에게도 대륙에 따른 미각, 또는 식문화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직 목축업에 대한 폭넓은 확인을 하지 않아 자신은 없다.

하지만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필자가 자연 축산업의 현장에서 1주일을 현장 체험한 것을 쓴 기록이니 믿을만하지 않은가.

토끼풀에는 질소가 풍부한데 이 질소가 소의 반추위에 사는 독특한 박테리아와 만나 질 좋은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소가 원하는 일이기도 하고 소를 식용하는 인간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잡식동물의…>에는 그 질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든 생명은 질소에 의지하고 있으며 자연은 질소를 재료로 아미노산 단백질 핵산 따위를 만들며, 생명에게 지시를 내리고 삶을 지속시키는 유전정보역시 질소 잉크로 씌어져 있고, 탄소가 생명의 양을 규정한다면 질소는 생명의 질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질소비료가 대량 보급되어 거의 없어진 것이긴 하지만 한국 재래 농법에도 한 해 아니면 두해 걸러 밭작물로 콩을 심곤 했다. 콩 뿌리에 있는 박테리아가 토양에 질소를 보급해 주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의 잦은 천둥번개 역시 공기 중 질소를 고정시킨 ‘질소 비’를 내려 농사를 돕는다. 자연의 신비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그 좋은 질소를 과학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에게 희망이었으며 또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고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지적하고 있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멜라민 우유 역시 질소로 단백질을 위장해 문제를 일으켰다.

공업용 화학물질인 멜라민에는 질소가 많다. 식품 단백질 함량을 쉽게 재는 방법이 질소함량을 재는 것이므로 우유에 물 타서 양을 늘리고 여기에 질소가 많은 멜라민을 넣어 마치 단백질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이었다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양질의 단백질은 소가 소다운 대접을 받으며 들판에서 좋아하는 클로버를, 그리고 벼과와 콩과에 속하는 여러 잡초들을 마음껏 즐기며 연신 트림과 방귀를 시원하게 방출하면서 만들어 낸다.

하지만 쇠고기의 효율적 대량생산을 위한 축산의 산업화로 지금 세계적으로 소다운 대접 받는 소는 아주 드물다. 뿐인가? 소의 되새김질로 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트림과 방귀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며 인간들은 그 트림 방귀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마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굴뚝을 틀어막자는 이야기와 같다. 평균수명 15년이 넘는 소를 3년 안에 잡아먹어야 한다는, 그래서 대부분 요절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소들은 앞으로도 소다운 대접은커녕 계속 고문과 같은 생을 살 수밖에 없다.

미친 소 파동에 물과 화학물질을 탄 우유. 이렇게 훼손되는 자신을 보며 아무래도 소들은 올해 그 순한 눈가로 눈물을 흘려 내릴 것 같다.

피모대각(被毛戴角),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성스러운 서원을 세운 생물만이 소로 태어날 수 있다 한다. 소들이 지금 눈물을 흘린다면 분명 자신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날로 증폭되는 인간들의 탐욕을 안타까워하며 흘리는 슬픈 눈물일 것이다.
김징자(칼럼니스트) |
2008-11-07 오후 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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