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4년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담선 대법회에서 한 수행자와 선학자의 대담은 실참과 선학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었다. 이후 불교학계에는 봇물 터지듯 수행을 주제로 세미나가 이어졌지만 학자의 외침만이 있었을 뿐 선사의 대갈일성은 볼 수 없었다. 서산대사는 <선가구감>에서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말씀”이라 했다. 교계 일각에서는 말하지 않는 선사와 마음을 모르는 학자의 무심함과 무지함이 부처님 가르침의 왜곡을 방조하고 조장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선사와 학자와의 대담이 최초로 열려 눈길을 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소장 현종)는 10월 24~25일 봉화 축서사(주지 무여)에서 제8차 조계종 간화선 세미나를 개최했다. ‘수행과 학문의 소통’을 부제로 열린 ‘선사와 학자와의 대담’은 조계종 원로위원 고우 스님을 비롯해 혜국 스님(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지환 스님(기본선원장), 의정 스님(용문선원장), 철산 스님(대승사 주지) 등 10여명의 선원장 스님들이 참석했다. 학계에서는 고영섭 교수(동국대), 신규탁 교수(연세대), 임승택 교수(경북대), 김호귀 연구교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등 선학 및 불교학 전공 학자 10여명이 자리했다.
1박 2일간 3차례 진행된 대담은 학술적 담론이 아닌 수행과 깨달음 등 수행자와 학자 양측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화하게 대화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고우 스님은 기조강의에서 “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나아가 국제 문제 등에도 불교계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부처님이 사부대중을 구성해 각자 해야 할 역할을 분담한 것과 같이 오늘날도 출가자와 재가자가 각각의 역할을 분담해 불교중흥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우 스님은 “출ㆍ재가간 역할 분담으로 세간의 문제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선이 되야 한다. 이를 위해 사부대중이 원활히 소통해 자기 능력에 맞는 역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수행하지 않는 학자들에 대한 경책도 있었다. 혜국 스님은 “학자들이 쓴 간화선에 대한 글을 보면 화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님은 “수행자와 학자가 함께 하는 자리를 통해 (학자들의) 화두에 대한 정견과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정견을 갖춘 학자들의 글은 대중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대담에 앞서 진행된 입재식에서 현종 스님은 “직절간명하고 살아있는 간화선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파돼 개인적으로는 이고득락하고, 사회적으로는 맑고 밝은 사회가 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선사와 학자의 대담를 마련했다”며 행사 개최 취지를 밝혔다.
무여 스님은 환영사에서 “한국문화상품으로 세계에 선보일 상품 중 으뜸가는 것이 간화선이지만 불자들조차 가치를 몰라 아쉽다”며, “이런 대화를 정례화해 한국 선불교의 세계화와 간화선을 통한 인류 공헌 방안을 탐구하자”고 말했다.
대담에서는 말과 글에 관한 선적 의미를 시작으로 재가자 수행 지침, 납자의 제접방법과 수행 점검, 화두 수행과 깨달음, 간화선과 여타 수행법과의 관계 등을 다뤘다. 간화선이 안고 있는 문제, 간화선과 사회참여, 간화선 활성화 방안 등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전 세계적인 명상 붐에도 불구하고 간화선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가 실참과 학문간의 교류 단절에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3차례 대담을 통해 간화선 대중화와 발전을 위해 불교학자 등 지식인들의 역할은 물론 수좌회 산하에 수행법과 간화선 대중화 방안 탐구 등을 전담할 연구소를 설립하자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