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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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공사중단 하고 대화해야”
불교환경연대 법응 스님, 고려대에 공개편지



고려대 기숙사 공사로 훼손 위기에 처한 보타사 마애불.
“개운사를 비롯한 불교계가 우리나라 대표적 사학인 고려대학교와 수행환경과 역사문화유적를 둘러싸고 대립하게 됐으니, 자칫 양측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을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10월 22일 개운사측의 고려대 항의방문이 예고된 가운데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 법응 스님이 고려대 현승종 이사장과 이기수 총장에게 보낸 공개편지를 통해 공사중단을 요청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스님은 “오랜 역사를 겨레와 함께 해온 종교가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과 대립 양상이라니, 우리 사회가 갈 데까지 간 것 아닌가 하여 비통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법응 스님은 유네스코총회에서 채택한 ‘역사 유적지의 보호와 현대적 역할에 관한 권고’를 들어 “개운사 인근의 불교문화유적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님은 “불교계는 구세대비(救世大悲)의 본분 상에서, 고려대학교는 건학과 교육이념의 철학을 구현하는 자세로서 서로 대면하고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불교계 주장과 학교측 주장이 합일에 이를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기구를 구성해, 순수한 자세로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법응 스님의 공개편지 전문이다.


존경하는 고려대학교 현승종 이사장님그리고 이기수 총장님과 20만 고대인에게!



존경하는 현승종 이사장님과 이기수총장님 그리고 20만 고대인 여러분!

개운사와 고려대가 한바탕 난리를 피워야 할 지경에 심히 곤혹스럽다는 것 외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근래 종교편향 문제로 정부와 불교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개운사를 비롯한 불교계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학인 고려대학교와 수행환경과 역사문화유적를 둘러싸고 대립하게 되었으니, 자칫 양측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을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오랜 역사를 겨레와 함께 해온 종교가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과 대립 양상이라니, 우리 사회가 갈 데까지 간 것 아닌가 하여 비통스럽기까지 합니다.

21세기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 할 민주주의, 인권, 복지, 생태환경의 담론과 고려대학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유, 정의, 진리의 문제는 그 근본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인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무량 무수한 갈등과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수한 갈등의 역사를 돌아보건대 제 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흔적을 지우고서는 그 어떠한 발전도 무의미했으며, 되레 해악이 되었음이 교훈입니다.

100년 역사의 고려대학교가 뿜어내는 정체성으로 인해 국민들이 고려대학교에 대한 인식에 공통된 것이 있듯이 우리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 역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것들로 인한 것이며, 한국불교의 역사 또한 그러합니다.

그 정체성이 내적인 것으로 인식과 의식의 세계라 한다면, 외적인 것은 형태를 갖춘 역사문화유적이라 할 것입니다. 각국 여러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문화유적들은 지역적으로 일부 유사성은 있으나 저마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현승종 이사장님, 이기수 총장님과 20만 고대인 여러분!

민족의 요람 보성전문학교의 탄생기(1905 - 1921)부터 민족고대 100년, 세계고대 1000년(1997 - 2007)까지 고려대학교 모든 유형무형의 가치들은 미래, 아니 인류역사가 존재하는 한 잘 보존해야 하는 가치들이며 고대인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일례로 고려대학교 본관이나 정문의 외형을 변경하려하거나 관리에 부실함이 엿보인다면 전 고려인이 들고 일어날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엔 고려대학교와 출신인들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역사와 전통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현하 인류는 황금만능주의에 의해 숭고한 인성이 피폐되고, 지구의 생태환경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황폐화하고 있습니다. 그에 편승하여 인류의 역사문화 유적 또한 서서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사의 유무형의 숭고한 가치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역사 유적지와 그 환경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 인류의 유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들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나 시민들은 이들 유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또한 이들 유산의 가치를 이 시대의 삶 속에 구현시킬 의무가 있다. 중앙 및 지방정부는 각 회원국의 조건에 맞게 지구 공동체와 모든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이들을 보호, 관리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몇 년 전 유네스코총회에서 채택한 ‘역사 유적지의 보호와 현대적 역할에 관한 권고 - 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AFEGUARDING AND CONTEMPORARY ROLE OF HISTORIC AREAS’의 한 대목입니다.

개운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불교역사유적은 불교계를 넘어 1396년부터 700여 년간 면면히 지켜져 온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문화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이곳에서 고단한 삶의 위안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지역 역시 유네스코의 권고와 같이 ‘보호, 관리할 책임’이 있으며 그러한 대접을 받을만한 곳입니다.

존경하는 현승종 이사장님, 이기수 총장님과 20만 고대인 여러분!

설사 현행법이 문화재와 1m 거리까지, 혹은 전통사찰의 일주문 앞까지 건축이 가능하다 해도 ‘자유’ ‘정의’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에서는 이를 외면해야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 할 것이고, 아직 이 땅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 할 것입니다.

고려대학교의 상징인 ‘자유’ ‘정의’ ‘진리’에 관해 고려대학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교의 교육이념인 ‘교육구국’의 건학정신을 더욱 적극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1955년 개교 50주년 기념을 계기로 자유, 정의, 진리의 3대 이념을 표방 구체화하였다. 이 3대 이념은 인류공통의 이상인 인간적 ‘자유’의 실현, 사회 속에 ‘정의’의 실현, 학문연구에서의 ‘진리’ 탐구에 대한 넘치는 정열을 집약하는 현대 대학으로서 高大의 이념을 정립한 것이다."

더불어 이기수 총장님은 "고려대학교는 여전히 우리 고려대만의 가치와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역설을 보면서, 세계화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고대적인 것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고려대학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우리의 고유한 가치와 정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러한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다음세대의 고대인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인류공통의 이상인 인간적 ‘자유’의 실현, 사회 속에 ‘정의’의 실현, 학문연구에서의 ‘진리’ 탐구나, 이기수 총장이 주장하는 ‘법고창신’의 정신이 천년에 가까운 역사문화유적, 그것도 국민의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불교유적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정녕 ‘자유’ ‘정의’ ‘진리’의 구현이며, 그야말로 ‘과거 역사의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제하면서도 법을 지킬 줄 아는 법고창신’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자 유좌(筍子 宥坐)에는 ‘군자지학 비위통야 위궁이불곤 우이의불쇠야 지화복종시이심불혹야(君子之學, 非爲通也,爲窮而不困, 憂而意不衰也, 知禍福終始而心不惑也. 군자가 학문하는 목적은 영화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곤혹스러워 하지 않고, 우환을 겪으면서도 의지가 꺾이지 않으며, 특히 화와 복의 시작과 끝을 알아 마음이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라고 했습니다. 상세한 의미 설명은 구차할 뿐입니다.

존경하는 현승종 이사장님, 이기수 총장님과 20만 고대인 여러분!

개운사가 속한 불교계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며, 고려대학교 역시 공개된 근래 10년사만 보더라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이 불교나 고려대학교의 근본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주장하는 바는 불교계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학 고려대학교가 본래의 자리에서 개운사 문제를 우리 사회의 멋있는 지평을 여는 결과로 회향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물질적 세계만을 추구하는 집단들과는 그래도 그 무엇인가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는 짓누름이 있습니다.

이상의 주장에 공감한다면 모든 문제는 원점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불교계의 주장과 학교 측의 주장이 합일에 이를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기구를 구성하여, 순수한 자세로 대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법과 제도는 물론 각자의 이기심을 잠시 내려놓고 불교계는 구세대비(救世大悲)의 본분 상에서, 고려대학교는 그 건학과 교육이념의 철학을 구현하는 자세로서 서로 대면하고 해결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교 100년을 맞이한 고려대학교가 세계적 국제적 비전을 담은 키워드는 ‘Global’ ‘Together’입니다. ‘Global’과 ‘Together’의 의미에 일말의 오해가 없다면 이번 문제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오는 22일 개운사는 수행환경수호 법회를 개운사 도량과 외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현승종 이사장님과 이기수 총장님의 지혜롭고 이성적인 자세로서 수행환경수호의 외부 법회가 취소되고 여법한 대화의 장이 마련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번 문제가 멋들어지게 해결되어 우리 사회에 큰 가르침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려대학교의 상징인 방패가 가진 ‘교육구국’의 이념은 자연 환경과 역사, 문화전통을 파괴로부터 구하는 포괄적 의미의 구국의 이념도 담고 있는 것이라 믿어봅니다.

고려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앙축 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 法應 합장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8-10-21 오후 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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