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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스님 지음
조계종 출판사 펴냄│9800원
의왕 청계사 주지ㆍ속리산 법주사 주지를 거쳐 조계종 입법기관인 중앙종회 의원직을 맡았던 지명 스님은 홀연 모든 공식 직함을 버렸다. 그리고 이제 뜻 맞는 신도들과 벽돌을 지어 날라 완공한 안면도의 안면암, 과천에 있는 안면암 포교당 그리고 괴산에 있는 각연사 등에서 법문을 하거나 글을 쓰는게 전부다. 이 책에는 지명 스님이 산에 다시 올라가기 직전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차곡차곡 써내려 간 54편의 글이 담겨 있다. ‘중앙일보’ ‘한국일보’ ‘불교신문’ 월간 ‘불광’ 등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했던 지명 스님은 지금까지 쓴 책들에서 ‘무(無)로 바라보기’를 주장해왔다.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무(無)를 강조한다. 하지만 스님이 주장하는 무는 ‘없음’과 다르다. 스님은 무(無)에 대해 “소유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임시 보관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다를 좋아하는 지명 스님은 죽음과 아주 가까이 접한 상태에서 무(無)를 닦기 위해서 요트를 타고 미국에서 한국까지 태평양을 횡단한다. 스님은 사납게 요동치는 파도에서 죽음ㆍ고독과 맞서는 수행을 하며 삶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시에는 스님과 고가의 요트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님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수행자 대부분 산속에 앉아 수행하는 것이 수행인줄 안다”며 “봄빛은 도시에 가나 산속에 가나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 없다. 선(禪)과 교(敎)를 가르지만 불교교리를 보면 관법아닌 것이 없다”고 답한다.
스님의 글 전반에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을 부정이 아니라 긍정으로 극복하는 방법이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스님의 법문이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편안히 전해진다. 마치 스님이 모든 직함을 버리고 초연히 산으로 되돌아갔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