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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 사회 종교의 공존을 위한 조건들
다종교ㆍ다문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다양한 전통이나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존중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불거진 종교 갈등이 우리 사회의 통합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안타깝다. ‘타문화와 타종교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을 선교성과로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던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가 그 원인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른 것’이라고 가르쳐 온 편 가르기의 결과다. 단순히 몇 사람의 부주의나 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무례한 전도행태로 인한 피로감은 비기독교인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누적되었고, 여기에 현 정권 출범 후 대통령을 포함하여 공과 사를 가리지 못하는 일부 공직자들의 몰지각한 종교 편향 행위가 불을 질렀다.
종교 갈등은 장로 대통령 이승만 정권 때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독교세가 주목받을 만큼 크지 못했고, 또 유일하게 대응할 만한 종교 세력인 불교마저 내부의 정화문제에 매달려 외부 변화에 적응할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회이슈화 하지 못하고 관대하게 넘기곤 했던 것이 내성을 키워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기독교는 더 이상 소수 종교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 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종교로 성장하여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민주화와 함께 높아진 국민의 권리의식과 개혁세력의 등장으로 잠에서 깨어난 불교계의 사회의식은 위헌적이고 초법적인 종교차별과 종교인권 침해 관행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종교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우월감으로 인해 선ㆍ포교의 사명감과 함께 어느 정도 심리적인 배타성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자부심을 내면의 자산으로 삼아 현실의 삶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포용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 그 종교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선교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그 표현과 행위는 다른 종교인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라야 한다. 타자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과도한 종교적 행위가 ‘자비와 사랑 대신 소외와 차별, 자유와 소신 대신 편견과 굴종, 배려와 관용 대신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여 사회악으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종교가 과연 선과 정의의 근원인지 헷갈리게 된다. 맨해튼 배경의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는 영국 방송국의 한 광고가 솔깃해지는 세상이다.
종교 간 서로 배려하며 공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무엇일까. 사찰방화, 불상파괴, 단군상ㆍ장승ㆍ제단 파괴 등 폭력행위나 국민의 혈세가 특정종교에 편향되게 사용되는 정책 등 명백한 범죄행위는 아예 논외로 하자. 한 개인의 일상의 삶에서, 그리고 공인의 입장이나 공공장소에서 허용되는 종교적 표현과 행위의 한계를 사례들 중심으로 살펴보자.
타자에 대한 배려 기본, 개인 권리 침해 ‘어불성설’
첫째, 개인의 종교 표현과 행위는 타자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다. 한 개인의 권리 행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계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종교에 심취해 있을수록 배려 없이 무심코 하는 말이 타종교인에게는 불편하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는 점을 쉽게 잊고 산다. 문화적 편견, 종교적 우월감을 배경으로 한 배타적 언행, 타종교를 교묘하게 조롱함으로써 불쾌감을 유발하는 말, 타종교를 비하하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내는 행위, 심지어 스토커 수준의 도를 넘는 공격적 선교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의식적, 습관적 언행
아무 때나 하나님, 관세음보살, 기도 또는 합장, 특정종교에 대해 호ㆍ불호를 가볍게 말하기, 별 생각 없이 “크리스마스 선물 사주구요” “종교가 있느냐? 교회 다니느냐?”고 묻기, 가정통신문이나 명함에 특정종교 상징 또는 교리 써 넣어 배포, 종교시설 아닌 곳에서의 결혼식 중 특정종교 기도 및 찬송, 강의 중 과목과 무관하게 자신의 종교 설명에 많은 시간 할애.
△문화적 편견
장례 또는 제사 때 “절 못하겠다”, 아예 제사 자체를 거부하기도.
△편애 또는 편 가르기
교회 다녀온 학생들에게만 ‘칭찬 스티커’ 주기, 교수 연구실에서 지도 학생들과 특정종교 공부하거나 특정종교인들끼리만 어울려 타종교인 노골적인 왕따.
△우월감 표현
큰 십자가, 염주 일부러 드러내기, 일요일을 굳이 주일이라 표현, “교인(개신교인)이라 거짓말 못 한다” “요즘도 불교 믿는 사람 있나요?” 등 황당한 말.
△타종교 비하, 조롱
“석가모니 불교 만들지 말았어야, 스님들도 예수 믿어야, 못사는 나라 종교.”(장경동 목사)
“머리 민 정신 나간 사람들, 중들, 웃기는 짬뽕, 싸가지 없는 사람들.”(신일수 목사)
△폭언, 협박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 불교는 미신, 야만, 마귀, 사탄.
△몰상식한 전도행위
스토커 수준의 무례한 선교(집 방문, 학교 내, 스님에게까지), 부처님오신날 불교의 상징인 조계사 앞에서 찬송예배,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협박, 군 장교의 고압적 종교 강요(세례원서 배포, 비신자 반성문 강요, 염주휴대 금지 등).
움직이는 권력, 공인의 공개적 종교행위 ‘위험’
둘째, 국민 대중에게 그 파급효과가 큰 공인의 공개적인 종교 행위는 위험하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인은 그 존재 자체가 ‘움직이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인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야 한다. 위에 언급한 개인의 종교 표현이나 행위도 공인인 경우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물론 공직자에게도 종교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무심코 또는 의도적으로(이 경우 권력 남용) 타종교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소외감, 심지어 2등 시민으로까지 느끼게 한다면 정교분리라는 헌법정신에 반하여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공인의 자격이 없다.
공공장소나 행정시스템도 특정종교가 차지하거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국민 모두의 공동자산이므로 누구나 종교적 부담 없이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영역에서의 종교행위는 더욱 엄격히 제한해야 하고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직자의 (무의식적인, 묵인에 의한) 종교행위로까지 간주할 수 있다.
△공직사회의 종교차별, 정교유착
공식행사(이취임식, 개원식, 입학식, 졸업식, 출정식 등)에서의 기도와 예배, 개신교 공직자 기도모임 ‘홀리클럽’ 및 ‘성시화운동’(국내외 50여 개 본부), 정장식 前 포항시장(중앙공무원교육원장 복귀)의 시 예산 1% 성시화운동에 사용 계획, 서찬교 성북구청장의 ‘교동협의회’ 및 개인 선교행위, 어청수 경찰청장 ‘경찰 복음화’ 광고 포스터에 조용기 목사와 사진 게재(관례?), 국고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의 직원 채용 시 종교차별 및 수용자 특정종교 강요, 공기업 위탁업체 선ㆍ포교 행위 묵인, 주대준 청와대 경호처 차장 “모든 정부부처 복음화가 나의 꿈” 발언, 오현섭 여수시장 ‘복음박람회’ 기고, 이명박 서울시장 ‘서울시 하나님께 봉헌’ 및 부산 ‘사찰 무너져라’ 부흥회 축하 동영상, 이명박 서울시장 청계천 준공 예배(하나님 역사 운운, 비기독교인 납세자 우롱), 공정택 교육감 교육청의 전자문서 시스템 이용 기도회 홍보 및 참석(국민 93% 부적절), 검찰 수사관 불자 고소인에게 기도 강요, 수도권 대중교통정보시스템(알고가) 등의 사찰 누락, 종교시설 투표소(국가인권위 시정 권고, 위헌소송 중).
△공교육기관의 기본권 침해
국고 지원을 받는 유치원, 어린이집, 종교사학의 교직원 채용 시 종교차별과 특정종교 교육, 국공립학교(서울대, KAIST 등) 특정종교인만을 위한 특별 공간(교육관, 창조관 등), 국·공립학교 특정종교 행사에 장기 임대 계약(경기여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임대).
△공공장소의 종교 오염
공영방송에서 특정종교 언어(주일 등) 사용, 길거리 또는 청사, 경찰서 지하철 내 기도회, 예배, 선교행위, 공공시설에 종교 선전 문구 및 종교 상징물 부착(강의실 십자가, 옥외광고 선교문구).
△언론 방송 및 기타 공공자산의 사적 이용
방송연예인의 과도한 종교 표현, 공영방송을 이용한 국가대표 골 세리머니, 지폐 ‘예수천국 불신지옥’(국가자산 훼손 범죄).
종교 강요하는 것은 성희롱과 마찬가지
선진국에서는 개인의 종교자유의 보장이나 공적 영역에서의 종교 중립이 잘 지켜져 상식화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의 종교차별 기준에 대해 언급한 뉴욕의 어느 한인 교수의 글이 생생하다.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종교인권 상황과 비교되어 더욱 그렇다. 뉴욕 주법(州法)에 따라 관공서와 모든 주립ㆍ시립학교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 기업체 신임 직원에게 의무적으로 실시되는 오리엔테이션에서의 ‘허레스먼트(harassment)’ 교육에 관한 내용이었다.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취급되어 적극적인 전도(傳道)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특정 종교를 이야기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종교에 관한 차별은 성 차별, 성희롱, 인종 차별, 동성연애자 차별과 함께 엄하게 규정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소송이 따르고 개인은 물론이고 개인이 속한 단체, 학교, 회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가 종교 편향을 보이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종교 편향처럼 느끼게 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종교적 오염, 무례, 차별, 폭력까지 감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을 치유하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닥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가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종교인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피해라고 느낄 때 마땅한 규제 또는 처벌 수단도 없어 더욱 답답하다. 공공영역만이라도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공직자의 종교중립’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